주주에 대한 이사 책임을 강화하는 상법 개정안이 하반기 ‘역동경제 로드맵’에 포함되지 않은 건 부처 간 이견과 재계 반발을 조율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경제정책 컨트롤 타워인 기획재정부마저 뚜렷한 해법을 내놓지 못하면서 ‘오너 리스크’를 해소할 지배구조 개편 추진은 당분간 속도가 지지부진할 전망이다.
4일 기재부의 ‘2024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 담긴 자본시장 선진화 방안 중 지배구조 개선 파트에는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기존의 ‘회사’에서 ‘일반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이 들어 있지 않다.
이사의 충실 의무를 확대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은 기업 가치 제고라는 ‘밸류업 프로그램’의 취지를 살릴 근본적인 시작점으로 꼽힌다. 해외 투자자들이 지속적으로 제기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려면 한국 기업 특유의 오너 중심 체제부터 뜯어고쳐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에서 상법의 개정을 담당하는 법무부는 올해 초 이 사안에 뚜렷한 입장을 나타내지 않고 있다. 올해 초 반대 의견을 내놨다가 이후 관련 공청회 개최 의지를 보이는 등 찬성 입장으로 선회하는 듯했지만 여전히 법 개정에 부정적인 것으로 전해졌다. 자본시장 선진화라는 밸류업 프로그램 취지가 법무부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데다 주주들의 소송 남발 등 사회 갈등만 키울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재계의 반발도 걸림돌이다. 지난달 말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 등 주요 경제 8단체는 상법 개정 계획에 반대하는 건의서를 정부, 국회에 제출했다. 재계는 이사의 충실 의무 확대가 기존 법체계를 훼손할 뿐만 아니라 글로벌 기준에도 벗어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미 소액주주 보호를 위한 다양한 법적 장치가 마련돼 있어 상법 개정의 실익이 부족하다는 점도 반대의 주요 근거로 꼽는다.
부처 간 이견을 조율하고 재계 반발을 조정해야 할 기재부도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다. 법무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등 부처 사이에서 총대를 메고 이견을 조율할 컨트롤 타워가 사실상 부재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기재부 고위 관계자는 “상법 개정안 추진에 대한 의지는 분명히 있다. 부처 간 협의와 함께 기업과 이해단체들의 의견을 좀 더 비중 있게 고려해 최종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세종=김혜지 기자 heyj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