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체육관·서재 만들어 환대하니… 지역주민이 몰려들었다

입력 2024-07-05 03:00
광주광역시 광산구 우산동 주민들이 지난 1일 광주청사교회 교육관의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웃들이 교회 건물에 머물고 있다. 지역주민과의 상생 실험에 나선 교회들은 카페 체육관 서재 등을 조성해 이웃을 환대하고 있었다. 국민일보는 주중 새벽예배를 마친 뒤에도 이웃을 위해 문을 활짝 연 교회들을 방문했다.

광주광역시 청사교회(백윤영 목사)는 구도심에 있다. 주변은 공장 단지다. 교회를 에워싸고 있는 네모난 컨테이너 위엔 ○○산업 ○○특수 같은 간판이 걸려 있다. 이 교회는 2018년 교육관 건물을 지으면서 한 가지 도전에 나섰다. 지역주민을 위한 문화시설을 조성하는 일이었다. 교회는 지역선교 차원에서 주민들이 머물 시설을 물색했다.

교회 일대엔 이웃들이 이용할 카페가 없었다. 교회 본당에 카페가 있었으나 교회 문턱을 넘는 주민은 없었다. 교회 카페는 교인들만 이용했다. 교회는 프랜차이즈 카페를 열기로 결정했다. 주민들이 전도에 대한 부담 없이 올 휴식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영리 목적은 아니었다. 하지만 프랜차이즈 카페 본사는 오픈을 만류했다. 주변 상권이 형성돼 있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본사는 장사가 잘될 주일에는 카페 문을 열지 않겠다는 교회의 요구도 지적했다. 손익분기점이 맞지 않아 금방 폐업할 거란 진단도 나왔다.

“임차료가 안 들어 괜찮습니다. 무엇보다 큰돈을 버는 게 목적이 아닙니다. 장사가 안 돼도 본사를 탓하지 않겠습니다.” 교회는 세 차례 설득 끝에 프랜차이즈 카페를 입점시켰다.

프랜차이즈 카페는 교회 카페와 달랐다. 이용객 4명 중 3명은 지역주민이었다. 지난 1일 방문한 카페는 점심 식사를 마친 주민들로 시끌벅적했다. 2009년 이 지역에 이사 왔다는 안덕희(61)씨는 “여기는 동네에서 처음 생긴 카페”라며 “일주일에 한 번은 온다”면서 반색했다. 카페는 ‘2019 광주 세계수영선수권대회’ 당시에도 외국인 선수들로 북적였다고 한다. 교육관에 들어선 카페는 본사로부터 ‘2020년 우수가맹점’ 표창도 받았다.

경기도 용인제일교회 체육관에서 농구를 하는 지역 초등학생들.

교회 건물 전체를 이웃과 나누는 교회도 있다. 경기도 용인제일교회(임병선 목사)엔 단독 점용 공간이 없다. 주일 예배를 드리는 ‘대공연장’도 지역주민 행사에 내준다. 토요일엔 예배 공간이 결혼식장으로 활용되고 주중엔 교회 지하 5층 체육관에서 인근 어린이집 체육대회가 열린다.

지난달 30일 방문한 교회엔 예배를 마친 교인들과 지역주민들이 어우러져 있었다. 교회에 다녀본 적이 없다는 진선경(가명·47)씨는 자녀 둘과 함께 교회 키즈카페를 찾았다. 교회 체육관에서 만난 민은율(12)군은 친구 셋과 농구를 하기 위해 교회에 왔다고 했다. 민군은 “여기는 교회란 느낌이 안 들어서 좋다”며 “풋살장 PC방 등 놀 거리가 워낙 많아 학교 같은 반 친구 중에서도 이 교회를 모르는 애들은 거의 없다”고 했다.

지역주민들과 교회 공간을 나누는 교회 중엔 작은 교회도 있었다.

대전 제이교회가 평일 문 여는 제이의서재.

대전 제이교회(김경식 목사)는 평일엔 이웃을 위한 서재로 변신한다. 건물 정면에서 보이는 간판엔 교회가 아닌 공유 서재 ‘제이의서재’가 새겨져 있다.

주택가 주상복합 건물에 둥지를 튼 28평(92㎡) 공간엔 책 2000여권이 빗질해 놓은 듯 책장에 정리돼 있었다. 책은 무지갯빛처럼 색깔별로 정돈돼 있었다. 책 중엔 기독교 서적도 적지 않았으나 손이 닿지 않는 꼭대기에 진열돼 있었다. 주민들의 일반적 관심사를 고려한 배치였다.

서재 이용료는 1시간에 1000원. 핸드드립 커피까지 포함된 가격이다. 처음 방문자에겐 모든 서비스가 무료다. 서재엔 개인 책이나 커피를 가져와도 된다. 김경식 목사는 “주변 카페에서도 경쟁의식을 느끼지 않는다”며 “오히려 테이크아웃 손님이 늘어 고마워한다”고 했다. 김 목사는 “서재의 목적은 수익이 아닌 이웃 환대”라며 “개인 후원자와 후원 교회들을 통해 서재를 운영하고 있다”고 전했다.

카페교회로 개척된 경기도 성남 프렌즈교회 입구.

경기도 성남 프렌즈교회(허현무 목사)도 이웃들이 머물 공간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1월 문을 연 교회는 설립 때부터 ‘카페’ 구조로 디자인했다. 허현무 목사는 “개척교회는 기독교인에게도 두려운 곳일 수 있다”며 “카페를 통해 이웃과의 접촉점을 찾으려 했다”고 말했다.

주일을 제외한 날 교회는 허 목사의 목양실로 활용되고 있다. 신학대학원 객원교수이기도 한 허 목사의 특강이나 세미나가 열리기도 한다. 카페는 장민영 사모가 신학대학원을 졸업하는 내년부터 본격 운영된다.

허 목사는 “교회에 다니지 않는 이들에게도 ‘우리 교회 오세요’가 아닌 ‘카페에 놀러 오세요’라고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카페 교회를 개척하니 출석 교인을 비롯해 교회를 찾는 목회자와 신학생들에게 원 없이 음료를 대접할 수 있어 좋다”며 “내년부터는 지역 아이들을 위한 이벤트 공간이나 어르신 휴식 공간으로 카페 공간을 활용해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광주·대전·성남·용인=글·사진 이현성 기자 sag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