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음악은 어떤 의미일까. 어떤 음악은 과거의 한 시점을 또렷하게 기억나게 하고, 어떤 음악은 그 자체로 녹아들어 무미건조한 일상에 풍요로움을 채워주는 무엇일 수도 있다.
음악전문 출판사인 프란츠는 2년 전 소설가 김애란, 김연수, 윤성희, 은희경, 편혜영에게 음악을 주제로 한 소설을 써달라고 부탁했다. 음악이 모티브가 된다면 인물이나 소재는 자유롭게, 가요든 클래식이든 장르는 상관없다고 했다. 그렇게 독특한 기획으로 한 편의 ‘음악소설집’이 탄생했다. 책 뒤에는 작가 5명과의 인터뷰가 실려 있다.
김애란의 ‘안녕이라 그랬어’에는 주제곡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러브 허츠(Love Hurts)’. 7년 전 은미는 오래 사귄 남자 친구 헌수가 틀어 준 ‘러브 허츠’와 함께 아침을 맞는다. 한참 음악을 듣던 은미에게 한국말로 ‘안녕’이라는 말이 들렸다. 사실은 ‘암 영(I’m young)’이라는 영어 가사가 ‘안녕’으로 들린 것이다.
그렇게 7년이 흐른 뒤 은미는 화상영어 사이트를 통해 캐나다에 사는 로버트에게서 영어를 배우고 있다. 그 사이 은미와 헌수는 헤어졌고, 은미의 엄마도 돌아가셨다. 은미는 엄마의 간병을 위해 회사도 그만뒀고 다시 일자리를 얻기도 힘들어졌다. 로버트가 “한국말로 안녕을 뭐라고 하느냐”라고 묻는 순간, 헌수와의 일화가 생각난 것이다.
헌수는 헤어진 뒤 은미에게 전화했었다. 그때 “만약 지금 너를 다시 만난다면 네가 틀렸다고 하는 대신 그래, 가만 들어보니 그렇게도 들리는 것 같다고, 콘크리트 보도에 핀 민들레마냥 팝송 안에 작게 박힌 한국어가 참 예쁘고 서글프다 해줄 텐데”라며 훌쩍였다. ‘러브 허츠’를 수백 번 들었을 거라는 김애란은 “감정이 아니라 상황 때문에 헤어지는 어른의 연애, 어른의 이별을 그려보고 싶었다”고 했다.
김연수의 ‘수면 위로’에는 드뷔시의 ‘달빛’이 살짝 숨어 있다. 세상을 떠난 애인 기진을 잊지 못하는 은희는 살기 위해 호흡법 영상을 보다가 기진과의 추억을 떠올린다. 어느 여름밤 둘은 한 대학의 노천극장에서 열리는 유명 피아니스트의 연주회에 함께했다. 사실 소설에는 피아니스트의 이름은 언급되지 않지만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2022년 연세대 노천극장 야외무대였다. 그 여름밤 마지막 앙코르곡이 ‘달빛’이었다.
‘달빛’을 듣고 온 밤 기진은 은희에게 오므라이스를 만들어 줬다. 달빛과 오므라이스는 기진 엄마와 연결돼 있다. 한때 피아니스트를 꿈꾸다 영천으로 이사 온 기진의 엄마는 우울증 앓고 생을 포기하려고 했었다. 집의 피아노를 팔아버리려고 하기 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들었던 엄마의 연주곡이 ‘달빛’이었다. 그리고 영천에서 유명하다는 오므라이스를 먹고 엄마의 삶의 태도는 변했다. 김연수는 “언어로 먼저 접근하고 음악으로 보완했다”면서 “드보르자크의 첼로 협주곡과 허회경의 ‘집으로 가는 길’을 넣은 두 작품을 쓰다가 결국 끝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윤성희의 ‘자장가’는 더할 것 없이 유쾌하게 사는 주인공 ‘나’의 하루로 시작된다. 나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 교통사고로 죽지만 완전히 죽은 것은 아니었다. 주변 사람들을 볼 수 있고 노래도 따라 부를 수 있었다. 아이들을 따라 노래방에 간 나는 ‘태어나서 본 것 중에 제일 커다란 불꽃’이라는 가사가 나오는 마지막 곡을 목청껏 따라 부르기도 한다. 소설에 곡명은 나오지 않지만 오마이걸의 ‘불꽃놀이’다. 윤성희는 오마이걸을 좋아한다고 한다.
나는 집으로 돌아온다. 딸을 먼저 보내고 상심에 빠져 있을 엄마가 가장 큰 걱정이다. 나는 엄마의 머리칼을 넘겨주며 나지막이 노래를 부른다. 엄마는 자면서 미소를 짓는 것 같았다. 나는 말한다. “나는 매일 밤 내 무릎을 베고 잠든 엄마에게 자장가를 불러 줄 것이다. 내가 아주 어릴 적 엄마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은희경의 ‘웨더링’은 그 자체가 하나의 음악 같다. G시로 가는 기차의 4인석에 앉은 네 사람은 현악 4중주의 연주자들이고 그들 각자의 이야기는 하나의 음악을 완성한다.
네 사람은 홀스트의 ‘행성’으로 연결돼 있다. G시에서 열리는 클래식 음악 행사의 진행과 해설을 맡은 기욱의 옆자리에는 ‘행성’을 악보로 듣는 노인이 앉아 있다. ‘행성’은 중학교 때 괴팍하고 신경질적인 음악 선생님이 알려준 곡이었다. 사실 그 노인은 그 음악 선생님일지도 모른다. 앞자리 인선에게 ‘행성’은 옛 애인과의 인연이 시작된 곡이고, 인선의 동료 준희는 가는 내내 ‘행성’을 열심히 듣는다.
편혜영의 ‘초록 스웨터’는 엄마가 죽기 전 미처 다 뜨지 못한 초록 스웨터를 들고 엄마의 친구들과 1박 2일을 함께 하게 된 나의 일상이 그려진다. 무엇보다 반가웠던 것은 엄마와 친구들의 추억이 깃든 노래방 테이프였다. 재생기가 없어 듣지는 못했지만 그 속에는 엄마의 즐거웠던 한때가 들어 있을 것이다. 편혜영은 “엄마가 내게 슬픔만 남겨두고 간 것은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엄마의 손을 마주 잡았을 때의 느낌을 기억했다. 삶에 냉담해질 이유가 많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은 것은 그 기억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5명의 작가는 자유롭게 썼지만 5편의 작품은 어딘가 모를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 이별과 죽음 속에서 피어나는 따뜻함이었다. 음악의 본질은 따뜻함인 걸까.
⊙ 세·줄·평 ★ ★ ★
·작지만 풍성한 책이다
·음악을 듣고 싶어진다
·이야기가 어떻게 탄생하는지 엿볼 수 있는 인터뷰가 고맙다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