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베다니에 임한 하나님 나라

입력 2024-07-06 03:14

인생에서 목숨 걸고 지켜오던 것 혹은 전부라고 생각하던 것을 포기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아마도 그것은 모든 것이 끝났다는 절망이거나 그보다 더 좋은 의미와 가치를 발견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죽었다가 살아난 나사로와 마르다 마리아가 살던 곳, 문둥병 환자 시몬의 동네이기도 한 베다니는 예루살렘 동남쪽으로 약 2㎞ 떨어진 곳입니다. 가난하고 영향력 없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살던 동네입니다. 이곳에 예수님이 찾아오신 사건은 베다니 사람들에게 평범한 일상 아니라 축제와 기쁨의 잔치였습니다. 그리고 그 잔칫날 마리아는 비싼 향유를 예수의 발에 붓는 예상치 못한 행동을 했습니다.

“그 비싼 향유를 가난한 자들에게나 붓지, 왜 이런 어리석은 낭비를….” 가룟 유다를 비롯해 여기저기 들려오는 비난의 소리에 마리아는 몹시 당황스러웠을 것입니다.

마리아에게 향유는 어떤 의미일까요. 가난한 동네인 베다니, 어떻게 생각하면 이곳은 마리아에게 벗어나고 싶은 삶의 자리이자 뒤도 돌아보고 싶지 않을 터전일 것입니다. 때로 피곤한 몸을, 때로 힘든 시간을 참아내고 수고하여 모은 향유는 지금보다 편한 삶의 터전을 꿈꿔온 그녀의 미래요 꿈이었겠다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그토록 수고하여 모은 향유를 마리아는 예수께 모두 부어버립니다. 조금만 부어도 될 법한 향유를 말입니다.

삶의 그토록 중요한 것이 뒤바뀌는 순간은 그보다 더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을 발견했을 때 가능합니다. 마리아는 그 비싼 향유를 예수와 바꿨습니다. 다시 말해 삶의 주인이 바뀐 이야기입니다.

찬송가 111장의 가사를 보면 동방박사가 향유를 드림은 예수님이 구주이심을 고백하는 결과입니다. 구약의 향유는 왕에게 드려지는 귀한 물품입니다. 마리아가 드린 향유는 예수님을 왕으로, 구주로 고백하는 그녀의 진심이었습니다.

이제 주님을 주인으로 모신 마리아의 삶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요. 향유를 다 부어버린 그녀의 삶은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요. 때로 우리는 믿음의 결과로 만사형통을 좇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변을 둘러보면 해결되지 못한 문제와 고통으로 우리는 힘이 듭니다. 사업의 실패나 자식 건강 관계의 문제 등 여전히 답이 보이지 않는 일들로 한숨을 내쉽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야 하는 고통 앞에 하늘이 무너져라 통곡하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모든 게 끝이다 싶은 현실 앞에서 또 다른 벼랑 끝에 섭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셔 향유를 다 부은 이후 그는 그 지긋지긋한 베다니를 떠나 대박 나는 삶을 살게 되었을까요. 어찌 보면 그녀는 또다시 향유를 모아야 하는 수고를 해야 할지 모릅니다.

마리아가 만난 예수님은 그녀를 가난의 문제에서 건져주는 능력의 예수님이 아니라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끌어안고도 살아야 할 이유를 발견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떠나야 할 이유가 머물러야 할 이유가 되는 것은 예수님이 베다니를 찾아가셨던 것처럼 문제 가득한 내 삶에 찾아오셨기 때문입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면서 내 고통에 사무친 탄식과 원망이 아닌 타자를 향한 삶으로 시선을 옮겨야 합니다.

마리아 사건은 복음이 증거되는 곳마다 들려집니다. 우리의 주인은 누구이며, 무엇을 꿈꾸고 있습니까. 애써 외면했던 기도, 부인했던 현실을 다시 끌어안을 용기와 그곳에 소망의 씨를 뿌려 하나님 나라를 꿈꾸는 우리이길 소망합니다.

정진애 따밥교회 목사

◇따밥교회는 ‘따뜻한 밥상’의 줄임말로 경기도에서 노숙인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노숙인들과 만남이 깊어질수록 어려움도 크지만 포기하지 않고 소망의 씨를 심고 있습니다. 노숙인들의 삶의 자리가 한숨 가득한 절망이 아니라 살아야 할 이유가 되는 천국이 되길 기도하는 교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