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급발진과 고령 운전 문제, 공론화 할 때다

입력 2024-07-03 00:32
지난 1일 서울 시청역 인근 교차로에서 차량이 인도로 돌진하는 교통사고가 발생, 사고 현장이 통제되고 있다. 연합뉴스

그제 서울 시청역 앞에서 15명의 사상자를 낸 교통사고는 기존의 대형 재난, 사고와는 또다른 충격을 안겼다. 평일 저녁 유동인구가 많고 교통 정체가 심한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차량이 인도에 있던 시민 9명을 치어 숨지게 한 사고는 이례적이었기 때문이다. 퇴근 후 집에 가려고 발길을 재촉하던 평범한 직장인들이 한순간에 희생됨으로써 누구나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공포감도 자아냈다.

60대 후반의 차량 운전자는 급발진에 의한 사고라고 주장했다. 사고 당시 술을 안 마셨고 직업이 버스 운전사인 점에 비춰 그의 주장에 수긍 가는 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통상 급발진은 급가속을 동반해 구조물 등에 충돌해야 차량이 멈추는데 CCTV 등을 보면 이 차량은 스스로 멈춰섰다. 급발진 시 운전자는 본능적으로 사람을 피해 가로수 등을 들이받기(회피 운전) 마련인데 인도로 돌진한 점도 납득키 어렵다는 전문가들이 많다. 경찰도 2일 브리핑에서 급발진 주장은 “피의자 진술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급발진 사례가 천차만별인 만큼 당국은 예단 없이 신속히 수사해 원인을 규명해야 할 것이다.

급발진 여부와 함께 ‘고령자 운전’ 논란도 부상했다. 고령에 따른 기기 오작동을 급발진 탓으로 돌리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 지난해 전체 교통사고가 전년 대비 감소한 것과 달리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는 8.8% 증가했다. 사고 원인을 가리는 것은 경찰의 몫이다. 다만 ‘급발진’과 ‘고령자 운전’ 해법은 뜨거운 감자와도 같았다는 점에서 이번 사고를 계기로 공론화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

현행법 상 급발진 책임 여부는 차량 제조사가 아닌 전문성이 부족한 소비자에게 있다. 그래서 차량 급발진이 인정된 사례는 국내서 한 건도 없었다. 업체 로비 등으로 매번 입법이 막혔는데 이 기회에 법 개정에 힘이 실리길 바란다. 지난해 65세 이상 운전면허 보유자는 475만명으로 4년 전보다 42%나 늘었다. 노년에 신체·인지 기능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더이상 고령자 대상 조건부 운전면허 발급, 운전면허 자진반납 제도 활성화를 망설일 때가 아니다. 법과 제도는 소비자의 편의와 안전을 위한 방향으로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