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은퇴한 A씨(66)는 아내의 만류에도 식기세척기를 구매했다. 평소 “은퇴하면 설거지는 내가 담당하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생각보다 힘든 설거지에 한 달 만에 두손 두발 들었다. A씨는 “설거지가 이렇게 힘든 줄 몰랐다. 식기세척기를 써보니 정말 편리하다. 진작 사지 않은 게 후회될 정도”라고 했다.
강모(37)씨는 아내보다 상대적으로 출퇴근이 자유로워 가사를 주로 책임지고 있다. 아이가 태어나고 나니 살림에 육아 부담까지 더해지니 너무 힘들었다. 아내와 수입을 따로 관리하는 강씨는 아내와의 상의 없이 식기세척기와 로봇청소기를 한꺼번에 구매했다.
2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온·오프라인 모두 남성의 가전 구매 비중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특히 30·40대 남성의 구매가 눈에 띈다. 업계는 과거보다 남성의 가사 참여도가 높아지면서 구매가 늘었다고 분석한다. 30·40대는 생애주기상 결혼·육아기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주방가전 구매 증가가 남성 가전 매출의 높은 신장률에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주요 백화점 3사 모두 30·40대 남성의 가전 구매율이 과거보다 크게 높아졌다. 신세계백화점에 따르면 2019년 남성 구매자 비율은 29.1%였다가 지난해 36.5%로 상승했다. 30대 남성의 구매율이 눈길을 끌었는데, 무려 155.3% 신장했다. 현대백화점 역시 2019년 대비 지난해 가전 분야 남성 구매자 비율이 늘었다. 30·40대 남성의 구매자 신장률은 15.5%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여성 신장률은 6.3%에 그쳤다.
롯데백화점은 해당 기간 남성 비율이 5%포인트 늘었다. 30·40세대 남성은 55%의 신장률을 보인 반면 여성은 35% 증가에 그쳤다. 가전제품 전문유통업체 하이마트에서도 같은 기간 30·40대 남성 구매자 비율이 15%에서 20%로 늘었다.
온라인쇼핑에서도 이러한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 G마켓에 따르면 2019년 대비 지난해 30·40대 남성 구매자의 거래액은 6% 신장했다. 30·40세대 여성의 거래액 신장률이 5%를 기록한 반면, 남성은 13%나 올랐다.
업계는 남성 1인 가구 증가도 가전 구매 비중 증가에 큰 영향을 미쳤을 거라고 보고 있다. 경기도 아파트에 혼자 사는 김모(37)씨는 최근 로봇청소기와 LG스타일러를 구매했다. 김씨는 “원룸이 아니라 청소에 시간이 많이 든다”며 “회사 다니면서 집 치울 시간도 부족하고 옷도 다릴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장모(32)씨 역시 1인 가구다. 자취를 시작한 지는 만 3년째다. 이사하면서 삼성 에어드레서, 건조기, 공기청정기 등을 마련했다.
행정안전부 인구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3월 기준 주민등록 인구 통계상 혼자 사는 남성 1인 가구는 515만4408가구(51.4%)로, 여성 1인가구 486만7005가구(48.6%)보다 많았다. 롯데하이마트 관계자는 “실제 매장에서도 혼자 가전을 보러 오는 남성이 많아졌다는 걸 체감한다”고 말했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