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절대적 면책특권”… 트럼프 족쇄 풀어준 美대법

입력 2024-07-03 00:15
미국 워싱턴DC 연방대법원 앞에서 1일(현지시간) 한 시위자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면책특권을 사실상 인정한 대법원 결정에 항의하는 현수막 ‘사면은 없다. 즉시 감옥으로 보내라’를 펼치고 있다. EPA연합뉴스

미국 연방대법원이 전직 대통령의 재임 중 공적 행위는 절대적 면책특권이 있다며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2020년 대선 결과 뒤집기 시도 혐의에 대한 면책 여부 판단을 하급심 재판부로 넘겼다. 이에 따라 트럼프 전 대통령의 관련 재판이 11월 대선 전에 열릴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사법리스크의 상당 부분을 해소하게 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와 우리 헌법을 위한 큰 승리”라며 환영했지만, 진보 진영은 대통령을 ‘법 위의 왕’으로 만든 반민주적 결정이라며 강력 반발했다.

대법원은 1일(현지시간) “전직 대통령의 모든 공적인 행동은 면책특권을 누리는 것으로 추정되나 사적 행동들에 대해서는 면책특권이 없다”고 밝혔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최소한 대통령의 핵심적인 헌법적 권한의 행사에 관해 면책특권은 절대적이어야 하고, 다른 공적 행동들에 대해서도 대통령은 면책특권을 부여받는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법무부 당국자들과 대선 후 진행한 여러 논의에 대해서는 완전한 면책이 적용된다고 판단했다.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에게 대선 결과 인증을 거부할 것을 압박한 혐의, 가짜 선거인단 구성에 관여한 역할 등 나머지 혐의에 대해선 하급심 법원이 공적·비공적 영역을 구분해 법리 적용을 판단하라고 요구했다.

이번 결정은 보수 성향 대법관 6명만 찬성했고, 진보 성향 대법관 3명은 반대했다. 트럼프 대통령 재임 시절 ‘6대 3’으로 보수 우위가 확고해진 대법원이 트럼프의 족쇄를 풀어주는 결정을 내린 셈이다. 진보 성향의 소니아 소토마요르, 엘리나 케이건, 커탄지 브라운 잭슨 대법관은 소수의견에서 “사실상 대통령 주변에 무법천지를 만들어 건국 이후 존재해온 현상 유지를 뒤엎는 결정”이라며 “미국 민주주의의 미래에 심각한 장기적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미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실에 정치적 라이벌을 암살하라는 명령, 권력을 잡기 위한 군사쿠데타 조직, 사면을 대가로 한 뇌물수수 등을 예로 들며 절대적 면책특권의 허점을 지적했다.

미 정치권은 트럼프의 대선 전복 시도 혐의 재판이 대선 전에 열릴 가능성은 사실상 사라진 것으로 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번 결정으로 트럼프는 그가 바랐던 거의 모든 것을 얻게 됐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대선에서 승리해 백악관으로 복귀하면 법무장관에게 자신에 대한 공소 취하를 요구할 것으로 내다봤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