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단·팬 염원이 간절했다 두 종목 동시 제패 값진 결실”

입력 2024-07-03 11:17 수정 2024-07-03 11:17
이지훈 젠지e스포츠 상무가 지난달 24일 서울 강남구 젠지e스포츠 사옥에서 프로게임단의 성과를 설명하고 있다. 이 상무는 올해 초 팬들과 약속한 국제 대회 제패를 이뤄내 기쁘다고 말했다. 권현구 기자

프로게임단 젠지가 최근 리그 오브 레전드(LoL)와 발로란트 세계 대회를 동시 제패했다. 젠지는 가장 성공적으로 프로게임단 운영 모델을 구축한 팀으로 평가된다. 국내 게임단 중 가장 많은 게임 종목의 팀을 운영하고 있고, 대부분 팀이 리그에서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고 있다. 수익 모델도 선도적으로 다각화했다. 게임단 운영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훈 상무를 만나 창단 후 7년여 동안 쌓은 게임단 운영의 노하우를 들었다.

-상반기 세계 대회를 잇달아 제패하며 전성기를 보내고 있는데.

“최근 우승한 두 종목 모두 선수단과 팬의 간절함이 만나 이뤄진 결실이라 더 값지다. 지난해까지 지역 리그에서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줬지만 국제 대회에선 아쉬움이 많았다. 올해 초 팬들과 만나 ‘올해는 꼭 국제 대회 제패하자’고 결연히 얘기했다. 염원대로 돼 감동이 크고 선수단이 정말 자랑스럽다. 우리가 연달아 우승할 수 있었던 건 감독, 코치, 선수들의 시너지가 말이 안 되게 좋기 때문이다. 매년 로스터를 짠 뒤 대부도로 워크숍을 간다. 이번에 선수단과 함께 시간을 보낸 뒤 그날 밤 제가 이 얘기를 했다. ‘우리 올해 사고 칠 것 같다.’ 아직 더 중요한 대회들이 남아있다. 한 계단씩 올라가는 마음으로 선수단이 합심해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

-여러 종목을 성공적으로 운영한 노하우가 있다면.

“우리는 e스포츠 전문 기업으로서 선수들이 게임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일념으로 지금까지 일해왔다. 초창기엔 시행착오도 있었다. 제가 처음 왔을 때 숙소, 전용 운동화, 활동복 등이 왜 필요한지 경영진이 이해하지 못했다. 미국에서 온 분들이 많았는데 프로라면 알아서 해야 한다는 거였다. 하지만 e스포츠는 특수성이 있어서 전문적인 케어가 요구된다. 가령 선수들이 어리기 때문에 하나부터 열까지 다소 과하다 싶을 정도로 챙기는 게 필요할 때도 있다. 또한 각 게임별로 매니저가 선수와 가깝게 지내면서 고민 상담이나 필요한 점을 세심하게 대응하고 있다. 이런 경험들이 쌓이다 보니 견문이 넓어지고 로스터 구성에도 무엇이 중요한지 더 명확한 방향성을 갖게 됐다.”

-아카데미 사업을 주력으로 하고 있는데.

“업계에선 일찍 시작한 편인데 지금은 최고라고 자부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누적 학생 수가 1만5000명 이상이고 3년 연속 유학 준비생 전원이 미국 명문대에 합격했다. 교육 분야에서 좋은 실적을 쌓는 건 긍정적이다. 당장 수익에서도 큰 역할을 하고 있고 업계 직업 창출에도 일조하고 있다. 마스터 트랙 프로그램을 통해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이를 e스포츠 업계 다양한 분야 인턴십으로 연결하고 있다. 업계에 대한 인식 개선과 선수 경력 단절의 대안으로서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아카데미에 발로란트 유망주들이 많다. 2~3년 후 프로 대회에서 활약할 거로 기대한다.”

-게임단의 적자 운영 문제가 근래 수면 위에 올랐다.

“연봉 문제가 가장 크다고 알려져 있다. 선수 연봉은 시장 가치에 따라 책정된다. 연봉이 높은 게 선수들 잘못은 아니다. 하지만 선수 연봉이 너무 높다는 점을 이제 팬들도 이해해 주시는 것 같다. 산업이 급성장하면서 덩달아 선수 연봉도 확 올랐는데, 팬데믹으로 투자가 줄면서 게임단 운영이 어려워진 측면이 있다. 저는 업계에 있는 입장에서 다른 수익 모델을 창출해서 가치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카데미나 여러 마케팅 사업을 왕성하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게임단 수익 개선을 위해 리그 운영사와 심도 있게 논의하고 있다. e스포츠는 타 스포츠와 다르게 수익 모델이 부족하다. 팬들이 균형감 있게 게임단 운영을 바라봐 주신다면 함께 힘을 내서 좀 더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성적과 안정적 수익 창출이 동반되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

-e스포츠 월드컵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곧 시작한다.

“업계에 정말 필요한 이벤트다. e스포츠 월드컵이 장기적으로 잘 유지되길 바란다. 저희는 전략적으로 성과를 낼 수 있는 게임 종목들을 꾸준히 잘 추려서 준비할 생각이다. 당장 LoL만 봤을 때는 선수단이 부담을 느끼고 있다. 롤드컵을 위해 한참 집중 연습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LoL팀 선수들이 살인적인 일정을 보내고 있다.”

-정부에서 지역 연고제를 언급했는데.

“게임단 운영의 안정성, 지속가능성 관점에서 필요한 일이다. 프로 축구나 야구를 보면 연고 팀에 대한 팬들의 응원이 평생 가는 걸 볼 수 있다. e스포츠는 온라인 기반이기 때문에 연고제가 근본적으로 의미 없다는 시선이 있지만 한편으로 지자체의 응원과 지원을 받을 수 있다면 고려해 볼 만하다. 당장 연고제를 실현하기에 괴리감이 크다. 원칙적으로 찬성하지만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저는 개인적으로 최초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LoL e스포츠에서 최초의 ‘포핏’(4-peat, 4회 연속 우승)을 했고 발로란트 종목에서 아시아 팀 최초로 국제대회 우승 타이틀을 얻었다. 선수단이 잘해준 덕분이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감사하다는 얘기를 하고 싶다. 요새는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얘기를 많이 한다. 선수단이 항상 최고가 될 수 있도록 겸손하게 묵묵히 제 역할 하겠다. 앞으로도 응원 부탁드린다.”

이다니엘 기자 d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