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환자 쏠림현상 더는 안돼”… ‘상급종합병원’ 명칭 바꾼다

입력 2024-07-02 04:03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비상대책위원회가 12일부터 무기한 자율 휴진을 하겠다고 예고한 1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안암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의료전달체계 개편을 위해 ‘상급종합병원’ 명칭을 변경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상급’이라는 표현으로 인해 환자 쏠림 현상이 심화하고 의료 이용이 과도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1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의료전달체계 개편을 추진 중인 의료개혁특별위원회 산하 전달체계·지역의료 전문위원회에서 최근 상급종합병원 명칭을 변경하는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논의에 참여한 전문위원은 “상급종합병원은 1차와 2차를 거쳐 가는, 2회 이상 의뢰를 받아야 갈 수 있는 3차 병원이라고 인식해야 하는데 상급종합병원 명칭만으로 ‘최고의 의료기관’이라는 인식을 주고 있다”며 “이 명칭이 환자 쏠림 현상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했다”고 말했다.

현재 의료법에서 규정하는 ‘상급종합병원’은 종합병원 중 20개 이상 진료 과목을 갖추면서 중증질환에 대해 난도가 높은 의료 행위를 전문적으로 하는 병원이다. 보건복지부가 인력이나 시설·장비, 진료, 교육 등의 항목을 평가해 선정하게 돼 있다. 지난해 12월 이뤄진 제5기(2024~2026년) 상급종합병원에는 47개 기관이 지정됐다. 상급종합병원으로 지정되면 같은 의료행위에 대해서도 30%의 가산 수가를 받는다.

하지만 상급종합병원에서 경증 환자까지 수용하다 보니 의료전달체계가 왜곡되고 있다는 문제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 때문에 위원회에서는 상급종합병원을 ‘중증의료기관’ 또는 ‘3차 의뢰 의료기관’ 등으로 변경하는 방안을 두고 전문위원들의 의견이 제시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도 명칭 변경을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다. 정부 관계자는 “의료전달체계 개편 논의에 있어서 명칭 변경을 검토하는 것은 맞지만, 어떤 명칭이 될지는 위원회에서 폭넓게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복지부는 2019년 한 차례 상급종합병원 명칭 변경을 추진한 바 있다. 상급종합병원 대신 ‘중증종합병원’으로 변경해 상대적으로 경증 환자들은 1·2차 병원으로 유도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중증종합병원’으로 변경할 경우 상대적으로 2차 병원에서는 중증 질환을 보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는 이유로 무산됐다.

이처럼 상급종합병원의 기능과 역할은 유지하면서도 명칭 변경부터 다시 추진하는 것은 왜곡된 의료전달체계를 바로잡기 위해 첫 단추를 바로 끼우겠다는 취지다.

지난 2월부터 의료계 집단행동이 시작되면서 전공의 의존도가 높았던 상급종합병원에서는 중증·응급환자 위주로 환자를 수용하고 있다. 오히려 비정상의 정상화 과정을 겪고 있는 만큼 정부는 이를 계기로 전달체계 개편 작업에 속도를 낸다는 것이다.

홍윤철 서울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환자들은 1차 의료기관을 먼저 방문한 다음 의학적 필요 때문에 2, 3차를 가야 하는데, 지금은 상급종합병원 의뢰서를 받기 위해 가는 경우가 많다”며 “‘상급종합병원’이라는 명칭 안에 ‘1·2차 의료기관은 진료 역량이 부족하다’라는 의미가 들어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명칭 변경 외에도 환자들의 인식 개선과 함께 지역 완결형 네트워크 의료체계 등 전달체계 개편에도 나설 방침이다. 지역 병원들과 네트워크를 구성해 환자를 중증도에 따라 수용하고, 그 대신 상급종합병원은 중증환자 진료에 집중하도록 지원한다는 것이다. 또 환자의 합리적 의료 이용을 지원하기 위한 방안도 검토해 7월 중에 발표할 계획이다.

김유나 이정헌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