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에 무너질라… 주택가 노후 담벼락 ‘안전 사각지대’

입력 2024-07-02 04:10
지난 21일 서울 관악구 한 주택가 공사현장에서 담벼락이 무너져 인근 주택에 잔해물이 떨어져 있다. 장마철에 접어들면서 건축법 사각지대에 있는 개인 소유 시설물에 대한 안전관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9일 오후 10시50분쯤 서울 중랑구 중화동에 있는 연립주택 담벼락이 강풍에 무너졌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사고 잔해가 골목을 뒤덮어 차량 통행에 불편을 겪었다. 중랑구청은 이후 추가 붕괴 위험이 없다고 판단해 방수포를 덮고 통제선을 설치하는 등 조치를 마쳤다.

본격적인 장마철에 접어들면서 아파트 옹벽이나 담벼락 붕괴 사고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폭우에 시설물이 무너지는 사고 위험에 철저히 대비해야 하는데, 문제는 사설 시설물에 대해선 보강을 강제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점이다. 시설 소유주에게 안전관리를 강화하도록 통지하는 데 그치는 상황이다. 건축법 사각지대에 있는 사설 시설물에 대한 관리·감독 방안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1일 찾아간 관악구 대학동의 한 아파트 근처엔 당장이라도 무너질 듯한 담벼락이 눈에 들어왔다. 30㎝ 두께의 단면이 고스란히 드러날 만큼 해당 담벼락은 툭 튀어나와 있었다. 담벼락은 주민들이 많이 이용하는 분리수거장 바로 앞에 있었다. 60대 주민 A씨는 “나무에 가려져 잘 못 봤는데, 벽이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다. 혹시라도 무너지면 사람이 크게 다칠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아파트 인근 주택가 건물의 담벼락은 지난 19일 이미 한 차례 무너졌다고 한다. 신축 공사를 멈추고 오랜 기간 방치돼 온 건물이었다. 주민들은 담벼락 붕괴를 우려하며 구청 등에 민원을 제기했다. 하지만 이미 약해진 지반 탓에 담벼락이 결국 붕괴한 뒤에야 복구 작업이 이뤄졌다.

관악구청에 따르면 2017년부터 민원 접수 등을 통해 위험성이 있다는 판단하에 관리 중인 관내 사설 시설물은 200곳에 달한다. 위험한 사설 시설물은 주로 관악구 내 고지대에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관악구 관계자는 “지역 특성상 오래된 노후 주택과 공사 현장이 많다 보니 사설 시설물의 안전문제가 많이 제기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구청 측은 사설 시설물에 대해서는 강제 조치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구 관계자는 “민원이 들어오면 보수나 보강을 하라고 소유주에게 통지하긴 하지만 강제할 수 있는 조항은 아니다”며 “건축물은 무단으로 용도 변경하거나 증축하면 건축법상 고발이나 이행강제금을 부과할 수 있지만 사설 시설물은 관련법이 없다”고 말했다.

시민들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관악구 행운동에서 떡집을 운영하는 50대 한모씨는 재작년 관악구에 쏟아진 물폭탄으로 가게 외벽이 무너졌다고 한다. 그는 “트라우마가 생겨 비가 많이 온다는 소식만 들어도 잠을 못 잔다”며 “올해는 비가 더 온다는데, 똑같은 일이 반복될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올여름 지난해보다 많은 강수가 예상되며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안전 사각지대에 더 신경 써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는 1일 “법 사각지대에 있는 사설 시설물에 대한 대응을 더욱 강화해야 과거와 같은 참사를 막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글·사진=한웅희 기자 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