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 ‘만독불침’ 이재명의 길

입력 2024-07-02 00:38 수정 2024-07-02 00:38

“아무래도 출마하지 않을 것을 확정했다면 사퇴하진 않았을 것 같습니다.”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24일 당대표직 사퇴 회견에서 연임 도전 관련 질문이 나오자 이렇게 답했다. 이중부정 화법은 오히려 연임에 대한 강한 의지 표명으로 들렸다. 그는 “개인 입장을 생각한다면 여러분 모두가 생각하시는 것처럼 지금 상태로 임기를 마치는 게 가장 유리할 것”이라고 했다. 개인적 입지를 따지기보다는 ‘당과 국가를 우선하는 대의’에 따라 당권 재도전에 나서겠다는 말이다.

당대표 연임은 사법리스크가 고조된 처지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하다. 지난해 9월 체포동의안이 내부 반란표를 타고 국회 벽을 넘는 상황을 겪으면서, 이어 법원이 구속 문턱에 선 자신을 돌려보내며 정당 대표라는 점을 영장 기각의 주요 사유로 드는 것을 보면서 그는 결코 대표직을 놓지 않겠다고 다짐했을지 모른다. ‘대표 권한을 십분 활용해서라도 당 장악력을 최대한 높이겠노라’ 결심했을 수도 있다.

이 전 대표의 최고 무기는 어떤 외부 공격에도 꿈쩍 않는 ‘맷집’과 위기에서도 기어코 살아남는 ‘생존 능력’이란 평가가 많다. 그 스스로도 “만독불침(萬毒不侵·어떤 독에도 당하지 않는다는 무협소설 용어)의 경지”라고 말한 바 있다. “난 포지티브가 아니라 네거티브 환경에서 성장했다. 적진에서 날아온 탄환과 포탄을 모아 부자가 되고 이긴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런 능력은 그가 ‘이재명의 민주당’을 만드는 일에 몰두하도록 했다. 강성 팬덤이 뒤를 받쳤다. 총선을 거치며 확보한 171석 진용으로 그 기반은 충분히 만들어졌다. 민주당은 22대 국회 들어 대장동·백현동 의혹,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 등을 수사한 검사 4명에 대한 탄핵, 대북송금 관련 검찰조작 특검법 추진에 나섰다. 표적 수사금지법, 판사 선출제, 법 왜곡죄도 꺼내 들었다. 가히 ‘올코트 프레싱’이다.

내부적으로는 당헌·당규를 바꿔 당대표가 대권에 도전할 경우 대선 1년 전 대표직을 사퇴해야 한다는 규정에 뒷문을 만들어뒀다. 부정부패 혐의로 기소된 당직자 직무정지 조항도 삭제됐다.

이런 분위기에서 8월 전당대회 막이 올랐으니 당내 다른 정치인 누구도 도전장을 내밀지 못한다. 최고위원 경선에 나서는 이들도 ‘친명 완장’을 내보이기 바쁘다. ‘또대명’의 깃발만 나부끼는 것이다. 지금 민주당은 ‘이재명’을 빼면 제대로 굴러갈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일체화가 됐다.

이제 주인공이 무대에 올라 2기 출정의 기치를 드는 일만 남았다. 현 민주당 구조상 연임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문제는 그다음이다. 당권 너머를 보고 있는 이 전 대표에겐 지난 대선 패배의 주요 이유였던 대중의 비호감이나 반감 정서를 극복하는 일이 여전한 숙제다.

현재 많은 이들은 민주당이 절대다수 의석의 힘으로 상임위원회를 독식하고 쟁점 법안 처리를 강행하는 걸 곱지 않게 바라본다. 법제사법위원장을 맡은 정청래 의원의 독불장군식 처사, “민주당의 아버지는 이재명” 발언이 보여주듯 ‘충성 경쟁터’가 된 당의 모습은 결국 중원으로 나가려는 이 전 대표의 발목을 잡게 될 수 있다. 국민은 이런 장면을 통해 이재명 체제 전체를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 전 대표가 먼저 경계하고 만류해야 한다. 돌연 친명 명패를 달려는 이들보다 고언을 아끼지 않는 오랜 동지들을 곁에 둬야 한다.

곧 돌아올 그가 어떤 메시지와 비전을 들고나올지 주목하는 이유다. 이 전 대표는 “국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뒤집을 수도 있다”는 말을 즐겨한다. 제아무리 만독불침의 고수라 해도 격랑에 배가 뒤집히면 속수무책이란 걸 아는 거다. 변화무쌍한 민심의 물결은 눈앞의 어떤 리스크보다 엄중한 시험대일 수 있다.

지호일 정치부장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