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9년 7월 1일 미국의 여행 사업가 3명이 모여 기도하던 중 성경을 배포하기 위한 단체를 결성하기로 했다. 이들은 단체 이름을 기드온으로 정하고 9년 후인 1908년 몬테나 슈피리어호텔에 25권의 성경을 처음으로 비치했다. 이렇게 시작된 국제기드온협회는 2015년 20억 권째 기드온 성경을 배부했으며 그해 전 세계 1300개 언어로 기드온 바이블앱을 제작했다. 한국은 1963년 한국국제기드온협회가 조직됐다.
1505년 7월 2일 독일의 폭풍우가 개신교 종교개혁의 문을 열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던 마르틴 루터(당시 법대생)는 스토터하임 근처에서 격렬한 뇌우에 휩싸였다. 몹시 두려웠던 그는 성 안나를 향해 기도하면서 수도사가 되겠다고 외쳤다. 2주 후 그는 아우구스티누스회 수도원에 들어갔다. 루터를 수도원으로 이끈 것은 자신의 구원에 관한 관심 때문이었다. 구원과 저주는 그가 살았던 일상과 상황 속에 깊이 젖어 들어 있었다. 그는 평생 우울증과 신경불안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당시 교회의 가르침에 따르면 젊은 수도사 루터는 선행과 고행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는 판결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실제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루터는 항상 자신의 죄악성을 심각하게 느끼고 있었으며 이를 극복하려 하면 할수록 오히려 죄의식은 강해졌다. 인간의 죄를 해결하고 죄의식을 덜어 주어야 할 고해성사가 오히려 루터를 더 절망 상태로 몰아갔다.
비텐베르크 대학에서 성경을 가르치던 루터는 성경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했다. 특히 로마서 1장에서 자신이 가진 난제들에 대한 해답을 발견했다. 로마서 1장 17절은 복음 속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고 선포했는데 루터는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의 심판이 아니라 믿음으로 사는 자들에게 주어진 의라고 깨달았다. 믿음과 칭의는 하나님 자신의 사역으로 죄인들에게 값없이 주어지는 선물이었다.
1962년 7월 5일 신학자이자 예일대 교수인 리처드 니버가 별세했다. ‘그리스도와 문화’는 대표작으로 그리스도인에게 늘 제기되었던 ‘그리스도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문화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한 전형적인 응답들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에른스트 트뢸치가 주창한 교회 유형과 분파 유형을 확장해 ‘문화와 대립하는 그리스도’ ‘문화에 속한 그리스도’ ‘문화 위에 있는 그리스도’ ‘문화와 역설적 관계에 있는 그리스도’ ‘문화의 변혁자인 그리스도’라는 다섯 가지 유형을 제시했다.
386년 7월 9일 콘스탄티노플의 초대 총대주교 네스토리우스가 지금의 튀르키예 마라스에서 태어났다. 네스토리우스는 마리아를 ‘테오토코스’ 또는 신을 낳는 자로 묘사하는 것에 반대하고 ‘크리스토코스’ 또는 그리스도를 낳는 자라는 용어를 선호한 것으로 유명하다. 알렉산드리아의 시릴과 같은 다른 신학자들은 이 용어가 그리스도께서 한 인격 안에 두 본성을 가지신 것이 아니라 두 본성과 두 인격을 가지신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우려했다. 431년 에베소 공의회는 이 견해를 이단으로 정죄하고 네스토리우스를 파문했지만 현대 역사가들은 이것이 지나치게 가혹한 조치였다고 판단한다.
1099년 7월 15일 1차 십자군이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수천 명의 아랍인과 유대인을 학살했다. 여성들은 강간당했으며 유아들은 성벽에 던져 죽였다. 도시 내에 살던 많은 유대인은 회당 안으로 피신했고 십자군들은 그들을 안에 가둔 채 불을 질렀다. 기록에 따르면 솔로몬 행각 근처에서는 피가 말의 무릎까지 차올라 흘렀다고 한다.
1674년 7월 17일 영국 사우샘프턴에서 찬송가를 작사, 작곡한 아이작 와츠가 태어났다. 천재였던 그는 5개 국어를 구사했다. 불타는 학구열로 음악 철학 신학을 공부했다. 1699년 부목사로 일하는 동안 600여편의 찬송시를 작사하고 각 분야 책과 설교집, 신학 논문 등을 냈다. 그가 작사한 찬송 중 한국교회 찬송가에 수록된 곡은 ‘목소리 높여서’(6장) ‘큰 영광중에 계신 주’(20장) ‘기쁘다 구주 오셨네’(115장) ‘웬 말인가 날 위하여’(143장) ‘만왕의 왕 내 주께서’(151장) ‘십자가 군병 되어서’(353장)를 비롯한 12곡이다.
1874년 7월 24일 스코틀랜드 애버딘에서 ‘주님은 나의 최고봉’(1927년 사후 출판)의 저자 오스왈드 챔버스가 태어났다. 챔버스는 찰스 스펄전 목사의 설교를 듣고 10대에 회심했다. 순회 성경 교사로 활동했으며 1915년 YMCA 소속 목사로 이집트 자이툰 주둔 군인을 위해 목회 사역을 하다가 맹장 파열로 수술을 받은 후 별세했다. ‘주님은 나의 최고봉’은 출간 이후 전 세계적 사랑을 받으며 현대 기독교의 고전이 됐다. ‘하나님보다 앞서지 말라’ ‘주님을 사랑하고 있는가’ ‘사명에 충실하라’ ‘모든 짐을 주님께 맡기라’ ‘기분에 굴복하지 마라’ 등 복음의 핵심과 크리스천 삶의 원칙 등으로 풍성하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미국 대통령 취임 때마다 선물한 책으로도 알려져 있다.
1918년 7월 25일 침례교 목사이자 사회복음주의 신학자인 월터 라우센부시가 별세했다. 그는 1886년부터 뉴욕 맨해튼의 우범 지구에서 제2독일침례교회의 목사로 사역하면서 자본주의 체제에서 가난과 질병과 폭력을 수반하는 산업주의의 위기를 깊이 인식했다. 그는 신앙생활과 사회생활을 분리하는 것은 예수를 잘못 이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고 사회 제도에 의한 억압과 착취로부터 인간을 구제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었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