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우리에게 양식을 주시는 은혜로우신 하나님 참 감사합니다. 아멘.”
지난 17일 들른 대구 중구 삼덕기억학교(원장 이은주). 머리가 희끗한 할머니와 할아버지 40여명이 식판을 챙기곤 저마다 식사 기도를 따라 불렀다. 기도가 끝나자 어르신들은 밥 한술을 크게 떠 입에 넣었다. 이들은 노인장기요양등급을 받지 못한 경도인지장애(경증 치매)를 앓고 있는 어르신들이다.
식사를 마친 어르신들은 저마다 식기를 반납한 뒤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꽃을 피웠다. 몇몇 어르신은 물리치료실에 들어가 공기압 마사지를 받거나 안마의자 등에 몸을 맡기기도 했다.
2014년 문을 연 삼덕기억학교는 대구시 특화사업으로 운영 중인 국내 최초의 ‘기억학교’ 중 1곳이다. 지역교회인 삼덕교회(강영롱 목사)와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한국장로교복지재단(대표이사 김정호 목사)이 함께 개원한 사회복지시설이다.
이곳에서는 경증치매를 앓고 있는 60세 이상 노인을 돌본다. 평일 주간 보호를 비롯해 치매예방 교육 프로그램, 병원 동행 등 보건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 경제 상황이 여의치 않은 어르신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학교는 경도인지장애 어르신 특성에 맞춰 정규 교과과정을 개발해 매달 프로그램을 다채롭게 구성한다. 어르신들은 사회복지사 간호조무사 조리사 등 전문가의 강의와 함께 음악·미술·원예·요리교실·건강체조 등 다양한 인지 재활 프로그램을 들을 수 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이용자 요구에 따라 예배를 드린다는 점이다. 이에 기억학교는 매주 금요일 삼덕교회 목회자와 함께 짧게나마 예배를 드리고 있다. 이은주 삼덕기억학교 원장은 “가족이 가장 돌보기 힘들어하는 질병 1위가 치매”라면서 “하지만 어르신들의 삶은 여전히 아름답다. 어르신들이 여생을 잘 보낼 수 있도록 축복하기 위해 교회와 손잡고 예배를 드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비신자인 어르신들도 적지 않게 있어 짤막하게 예배를 드리는데 되레 좋아한다”고 귀띔했다.
경도인지장애 어르신을 돌본단 취지에 맞게 학교 곳곳엔 세심한 배려가 묻어났다. 공간 한가운데 혈압측정기계를 설치해 건강을 수시로 확인할 수 있도록 했고, 자리마다 어르신들의 이름을 적어 인지능력 향상을 돕고 있다. 옥상에는 어르신들이 직접 재배하는 상추와 토마토 등 텃밭도 마련해 놨다.
기자가 방문했던 날은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생일잔치가 있던 날이었다. 고운 한복을 차려입은 주인공 어르신 4명은 기억학교 동료들과 사회복지사의 생일 축하를 받았다.
이어진 순서에선 ‘칠교교육’이 진행됐다. 7개의 종잇조각을 남김없이 모두 사용해서 일정 모양을 만드는 프로그램이다. 어르신들은 색종이를 오려 모양에 맞춰 붙이기 시작했다. 시작한 지 5분도 채 안 돼 포기하려는 어르신들도 있었지만 사회복지사들의 응원에 힘입어 모양을 맞췄다.
올해 10년을 맞이한 기억학교는 어느덧 어르신들의 보금자리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생들의 반응이 말해주고 있다. 정지혜(가명·89) 할머니는 “이곳에 온 지 벌써 1년이 넘었다. 주말엔 기억학교가 문을 닫아 평일만 오길 기다린다”고 말했다. 지난 4월부터 다니고 있는 박정현(가명·83) 할머니는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고 함께 이야기하니 외롭지 않고 행복하다”며 “매주 금요일 목사님이 기도해주는데 영적인 보살핌을 받는 기분이 든다”며 고마워했다.
이 원장은 “생명은 천하보다 귀하고 그 자체만으로도 존중받아 마땅하다”며 “어르신들의 마지막 순간까지 주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대구=김동규 기자 kky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