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헌법불합치 ‘친족상도례’… 법·현실 괴리 적극 해소해야

입력 2024-06-28 00:33

헌법재판소가 가족 간의 재산범죄를 처벌하지 않는 ‘친족상도례’ 형법 조항에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형법 328조는 직계혈족·배우자·동거친족이 저지른 절도·사기·횡령 등의 범죄는 형을 면제토록 규정하고 있다. 공권력이 가정사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것을 막고, 가족 내부 문제는 자율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취지가 담겨 있었다. 1953년 형법 제정 때부터 존재해온 이 조항이 71년 만에 사실상 폐지 수순을 밟게 됐다. 가족·친족 관계, 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예전과 달라진 상황에서 억울한 피해와 불합리한 상황이 벌어지는 현실을 바로잡는 결정이다.

친족상도례는 ‘법률은 가정의 문지방을 넘지 않는다’는 로마법에서 비롯됐지만, 유교 전통과 가부장제가 강했던 우리나라에서 가장 폭넓게 적용돼 왔다. 친족 연대 의식과 가부장 권위가 강했던 시절에는 경제적 분쟁을 가정 안에서 푸는 방식이 통했는데, 세월과 함께 가족의 경제공동체 성격이 약해지며 현실과 괴리된 법조항의 부작용이 속출했다. 박수홍 장윤정 박세리씨 등 유명인 사건을 통해 알려졌듯이 친족상도례 탓에 명백한 범죄의 책임을 묻지 못하고, 나아가 악용하는 상황까지 발생하고 있다. 헌재가 심리한 사건 중에도 지적장애인 조카의 상속재산 수억원을 가로챘는데 동거친족이란 이유로 처벌을 피한 사례가 있었다. 억울한 피해자의 권리를 찾아줘야 할 법률이 거꾸로 이를 가로막는 역설을 우리는 너무 오래 방치해 왔다. 많은 논란이 불거지고 개정 법안까지 발의됐지만 국회에선 이런 사회적 문제를 풀어내는 입법 기능이 작동하지 않았다.

가정 문지방 너머에 끼어들기를 꺼려온 여러 법조항은 차례로 현실과 충돌해 왔다. 가정폭력, 아동학대 등 집안일로 여기던 사안이 심각한 인권 범죄가 된 데 이어 친족상도례도 수명을 다했다. 이런 규정이 우리 법 구석구석에 숨어 있을 것이다. 법과 현실의 괴리를 국회가 적극적으로 해소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