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에 다녀왔다. “제주 말고 어떤 도시에서 살아보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곳이 바로 순천이다. 마침 순천에 신나는 소식도 들렸는데, 순천만국가정원·순천만습지를 방문한 관광객 수가 오랜 기간 1위를 유지하던 에버랜드를 제치고 가장 많은 관광객이 방문한 곳으로 꼽혔단다. 순천은 참 특별한 도시다. 일단 이름에서 풍기는 오라가 남다르다. 우리나라에 ‘천’으로 끝나는 도시가 꽤 여럿 있다. 그중 하나가 순천인데, 모든 도시가 ‘내 천(川)’을 쓸 때 오직 순천만 ‘하늘 천(天)’을 쓴다. 이름 자체가 하늘의 순리에 따른다는 뜻이다.
국가유산인 낙안읍성은 고려 때부터 즐거울 락(樂), 편안할 안(安) 자를 써서 오래도록 살 만한 평온함이 느껴지는 벌판에 형성된 동네라는 이름을 가졌다. 도심 곳곳에 남은 농협 창고 크기만 봐도 순천의 풍요로움이 느껴지는데,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말을 증명하듯 내가 만난 순천 사람들은 누구나 여유로운 성품과 성실함을 지녔다.
게다가 세계 최고의 자연 습지인 순천만을 보호하고 도심 팽창을 저지하기 위해 순천만 국가정원을 공들여 짓고 도시를 자연과 생태, 정원으로 브랜딩하는 도시가 순천이다. 순천 사람들은 그 정원을 내 집 마당처럼 여긴다. 전체 226개 지방자치단체 중 40%에 해당하는 89개가 소멸을 걱정해야 하는 인구 감소 지역이다. 그런데 순천은 대규모 도심 개발이나 대기업 생산기지 유치 없이도 10년 전과 비교했을 때 인구가 늘었다. 이는 정주성 높은 살기 좋은 도시라는 증거다.
순천 방문 목적인 순천시 도시재생 심포지엄에서 최근 진행한 로컬 콘텐츠 생태계 구축 관련 발제를 마치고 곧바로 국가정원으로 갔다. 이 심포지엄은 순천시와 국가건축정책위원회에서 준비했다. 오래전부터 벼르던 정원에서 하룻밤을 묵을 계획을 세운 터다.
지난해 순천 국제정원박람회 개최에 맞춰 정원 내 숙박 시설이 생겼다. 정원 스테이는 풍경을 거스르지 않는다. 작은 세모지붕 목조 건물이 강과 호수 주변에 흩어져 있다. 박람회 이후 워케이션 프로그램과 연계 운영되는 터라 숙소 안팎에 일할 수 있는 편의 시설도 잘 갖춰 놓았다. 한여름에 접어들어 온갖 풀벌레 소리와 맹꽁이 소리가 가득하고 여름의 꽃들로 정원은 더없이 마음을 기쁘게 했다. 별이 와르르 쏟아져 내리는 나무향 가득한 작은 방에서 아늑한 밤을 보내고 이튿날 이른 새벽의 정원 산책을 즐기며 버릇처럼 순천살이를 상상했다.
우리에게 도시란, 동네란 어떤 의미일까.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싶은가에 대한 고민을 얼마나 할까. 머물고 싶은 동네, 가능성을 발견하고 즐겁게 일할 수 있는 도시가 반드시 대도시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미 많은 경험과 시도들이 증명한다. 그 경험과 시도들이 도시를 멋지게 만든다. 사람은 도시의 바이브를 닮고 도시는 그 사람들을 닮는다. 그렇게 살고 싶은 동네와 도시가 만들어진다. 지금의 순천처럼.
고선영 콘텐츠그룹 재주상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