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산업 이끄는 ‘효용의 혁신’… 한국은 규제로 가로막아”

입력 2024-06-28 00:55
구태언 리걸테크산업협의회장이 지난 19일 서울 서초구 법무법인 린 사무실에서 “변호사와 대면상담한 지식에만 의존하는 것은 아무 장비 없이 청진기만 가진 의사에게 진료를 받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최현규 기자

리걸테크(법률·기술의 합성어)란 말을 국내에 처음 퍼뜨린 건 ‘로톡’이었다. 로톡은 변호사 광고 플랫폼이다. 2014년 이 서비스를 시작한 스타트업 로앤컴퍼니는 법률서비스 대중화를 표방하며 등장했다. 하지만 대한변호사협회는 이듬해 로톡이 변호사를 알선하는 ‘법조 브로커’ 행위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로앤컴퍼니는 “변호사를 알리는 플랫폼”이라고 맞서 싸웠다. 양측의 긴 공방 끝에 법무부는 결국 로앤컴퍼니의 손을 들어줬다.

리걸테크 스타트업은 ‘인공지능(AI)’으로 기지개를 켜는 듯했다. 변호사의 업무를 도와주는 ‘AI 법률비서’와 생성형 AI를 활용해 법률 지식을 알려주는 ‘챗봇’까지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변협은 최근 다시 법무법인 대륙아주의 ‘AI 대륙아주’ 챗봇의 무료 법률 상담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AI가 변호사 업무를 대신해 수익을 내면 변호사법 위반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업계는 또 리걸테크의 성장이 가로막히는 것은 아닐까 우려하고 있다.

리걸테크산업협의회장인 구태언 변호사를 지난 19일 서울 서초구 법무법인 린 사무실에서 만나 논란에 대한 의견과 해법을 물었다. 협의회는 리걸테크 스트타업 협의체다. 구 회장은 테크앤로 대표이자 린 소속 변호사다. 다음은 일문일답.

-한국의 리걸테크 현주소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리걸테크는 간단히 말하면 법률산업의 디지털 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산업은 디지털 전환이 1995년 인터넷 도입과 함께 이뤄졌다. 그러나 법률산업은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100년 전을 상상해보라. 예나 지금이나 변호사가 법률 업무를 하기 위해 의뢰인을 직접 만나야 하는 것에 변함이 없다. 판례 검색을 인터넷으로 할 수 있다는 것 외에 달라진 게 별로 없다. 한국의 리걸테크는 이제야 1차 산업혁명이 일어나는 중이라고 본다.”

-리걸테크 스타트업들이 최근 AI 도입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AI 도입으로 법률 서비스의 접근성, 효율성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한국의 법률 시장 규모를 키우고 누구나 법률 서비스를 간편하게 누릴 수 있는 상황이다. 1만원짜리 서비스를 AI화시키는 것보다 100만원짜리 서비스를 AI화시켰을 때의 인하 효과가 더 크다. 수많은 사람이 법률 서비스를 이용하면 법률산업에서 ‘효용의 혁신’이 일어나게 된다. 리걸테크의 역할이다.”

-최근 변협은 대륙아주의 ‘AI 대륙아주’ 서비스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는데.

“변협의 우려는 법률 서비스의 품질과 윤리를 유지하려는 노력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AI는 변호사의 업무를 보조하고 효율성을 높이는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 대륙아주의 AI가 제공하는 정보는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법률 지식 수준에 불과하다.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나 변호사 품위 유지 의무 위반이 없다. 변협이 법률소비자들이 양질의 법률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리걸테크 플랫폼의 성장을 가로막지 않았으면 한다.”

-해외의 ‘리걸테크 공룡’으로 알려진 톰슨로이터와 렉시스넥시스가 AI를 앞세워 한국 시장 문을 두드리고 있다.

“구글을 생각하면 된다. 전 세계에 진출했다. 이 업체들은 한국의 리걸테크 시장에서 데이터를 선점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국내 스타트업은 호미를 들고 있는데 해외의 리걸테크 기업은 불도저를 끌고 온다고 보면 된다. 단순히 미국 법률에 특화돼 있다고 해서 안심할 수 없다. AI의 특성 때문이다. 한글 판례만 학습하면 언어는 장벽이 아니다. 한국 스타트업과 해외 기업의 싸움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다. 성경에서는 다윗이 이겼으나 현실세계에서는 그럴 가능성이 작다.”

-리걸테크 성장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한국의 리걸테크산업이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엄격한 규제다. 또 대법원의 제한적인 판례 공개도 한 원인이다. 대법원은 지난해 1월 이후 선고한 판례를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한 건 과거 판례다. 대법원은 현재 판례를 건당 1000원에 팔고 있는데 1000만건을 사려면 100억원이 필요하다. 대법원이 공공재 성격의 판례로 장사를 하는 것이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쿠팡을 징계한 데 대해 구 회장은 ‘구한말 보는 듯하다’고 발언했는데, 리걸테크처럼 플랫폼산업 규제로 본 것인가.

“플랫폼 규제는 소비자 보호와 공정 경쟁을 위한 중요한 수단이지만 과도한 규제는 산업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 리걸테크 스타트업들은 플랫폼을 규제하겠다는 단체들로부터 공격받으면서 그간 제대로 투자도 받지 못했다. 중요한 성장기에 기회를 얻지 못한 것이다. 국내 리걸테크 스타트업은 해외 리걸테크 플랫폼으로부터 법률산업 생태계를 지키는 방위군 역할을 한다. 쿠팡과 네이버도 국내 중소기업들을 알리와 테무 등 해외 이커머스로부터 막아내고 있다. 과도한 규제는 이들 기업의 발전과 성장을 가로막고 결국 국내 중소기업에 타격을 줄 것이다.”

-국내 리걸테크산업은 어떻게 성장할 수 있는가.

“국내 법률 시장 규모는 7조원밖에 안된다. 법률 시장도 의료 시장처럼 커지기 위해서는 박리다매 구조가 필요하다. 그 구조 역할을 하는 게 플랫폼이다. 국민은 시대에 맞는 서비스를 누릴 권리가 있다. 변호사와 대면상담한 지식에만 의존하는 것은 아무 장비 없이 청진기만 가진 의사에게 진료를 받는 것과 같다. 리걸테크는 일종의 ‘변호사의 법률 기기’다. 법률 시장에서도 시대에 맞는 규제 혁신이 필요하다.”

한명오 기자 myung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