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동료 목사님들과 독서 모임이 있었습니다. 주제는 ‘영적 리더십’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다음 날 어떤 글을 읽다 보니 ‘리더’ ‘비전’과 같은 낱말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 그 낱말들이 이전보다 훨씬 피부에 와닿았고 생동감 있게 느껴졌습니다. 다시 말해 같은 낱말들을 보는 저의 ‘눈’이 조금은 달라진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길에서 만난 두 시각장애인의 눈을 고쳐주시는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두 시각장애인에게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고 물으십니다. 그들이 “그러하오이다”라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너희 믿음대로 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두 시각장애인의 눈이 밝아졌습니다. 여기서 눈이 밝아졌다는 것은 물론 앞을 보게 됐다는 것이지만, 한 걸음 더 나가서 두 시각장애인의 영적인 눈이 열렸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영적인 눈이 열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첫째, 그것은 바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즉 모든 것을 이전과는 다른 눈으로 보게 되고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9장을 보면 바울이 예수님 믿는 사람들을 붙잡으려고 다메섹으로 가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려고 앞장섰던 바울의 눈이 멀게 되고, 결국 바울은 다른 사람의 손에 이끌려서 다메섹 성으로 가게 됩니다. 그러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제자 아나니아가 바울에게 안수하니 바울은 다시 앞을 보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은 다시 앞을 보게 된 바울이 과연 이전과 같은 눈으로 보게 됐을까 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전과 다르게 모든 걸 믿음의 눈으로 보게 되고, 또 부활하셔서 자신을 만나주신 예수님의 눈으로 보게 되지 않았을까 짐작해 봅니다.
둘째, 영적인 눈이 열린다는 것은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하나님의 능력과 권능을 경험하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열왕기하 6장에서는 이스라엘과 아람의 전쟁에서 아람 왕이 선지자 엘리사를 죽이려고 군대를 보내 도단 성을 포위한 일이 있습니다. 이 장면을 본 엘리사의 사환이 무서워 떨자, 엘리사가 하나님께 사환의 눈을 열어달라고 기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군사와 말과 마차가 성읍을 에워쌌을 때 사환이 엘리사에게 ‘우리가 어찌하면 좋습니까’라고 말하는 것은 아마도 ‘우리는 이제 꼼짝없이 죽게 생겼습니다’라는 뜻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 엘리사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사환의 눈을 열어주시자 사환은 그들을 둘러싸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시는 ‘하나님의 불 말과 불 전차’가 보인다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사환의 눈이 열렸다는 것 역시 그의 영적인 눈이 열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듯 사환의 영적인 눈이 열림으로써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하나님의 능력과 권능을 경험하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도 예수님의 은혜로 영적인 눈이 활짝 열려서 항상 지켜주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권능을 발견하고 경험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더이상 불안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고 어떤 어려움이나 문제도 견딜 수 있을 것이며 마침내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겪는 모든 일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깨닫고 모든 일을 믿음의 눈, 예수님의 눈으로 보게 되는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축복합니다.
박민 방화동중앙교회 목사
◇방화동중앙교회는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으로 서울 강서구에 있습니다.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분의 음성에 귀 기울이며 예수님의 손을 붙잡고 살아가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 설교는 장애인을 위해 사회적 기업 ‘샤프에스이’ 소속 지적 장애인 4명이 필자의 원고를 쉽게 고쳐 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