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꼭대기 산위의 교회, 울타리 대신 길 내주고 쉼터 제공

입력 2024-06-25 03:08 수정 2024-06-25 17:02
강병철(오른쪽) 서울 초대교회 위임목사가 지난 14일 서울 동작구 사당동의 교회 건물 옥상에서 이정환 장로와 함께 십자가 탑과 ‘평화통일의 종’을 배경으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서울 동작구 사당동 초대교회는 한마디로 산 위의 교회다. 동네 언덕길 맨 위에 자리 잡아 마을을 두 팔로 품은 듯 온 동네를 굽어본다. 교회 주변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교회 뒷산 바로 너머엔 국립서울현충원이 자리잡고 있다.

동네 품은 산 위의 교회

지난 14일 찾은 교회는 자연과 벗해 평온한 느낌을 줬다. 하지만 초대교회가 지금보다 아랫자락에 처음 자리 잡았을 때만 해도 동네 분위기는 썩 좋지 않았다. 교회 바로 뒤편으로는 이 동네 지명의 유래가 됐다고 알려진 터줏대감 같은 ‘사당(祠堂)’이 있었다. 동네에는 ‘卍(만)’자가 적힌 깃발을 문 앞에 내 건 점집도 많았고, 무분별하게 내다 버려진 쓰레기로 산을 이뤘다.

이날 교회에서 만난 강병철(62) 목사는 “2003년 교회 5대 담임목사로 부임할 때만 해도 동네 사람들은 워낙 터가 센 곳이라 교회가 부흥하지 못할 것이라고 수군거렸고, 실제로 이전까지 교회는 내분의 아픔도 겪었다”면서 “그만큼 동네와 교회가 영적으로 눌려있다는 생각에 이곳이 영적으로 거룩한 동네가 되도록 함께 기도하자고 교인들에게 늘 권면했다”고 말했다.

기도의 응답이었을까. 이후 사당은 그 주인이 세상을 떠나며 없어졌다. 미국에서 교회를 다닌다는 그의 자녀는 대지 매각 전 강 목사를 찾아 돌아가신 부모를 위한 기도를 부탁했다고 한다. 초대교회 역시 강 목사 부임 후 안정됐고 부흥도 했다. 예배당 건축과 함께 동네도 깨끗해졌다.

예배와 소통 접목한 교회 공간

2017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와 건물을 지은 초대교회는 예배당을 건축할 때 두 가지를 고려했다. 첫째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공간’이다. 당시 유행한 공연장 같은 분위기의 예배당이 아닌 경건과 절제의 차별화된 예배당 모습을 담고자 했다. 강 목사는 “경건하되 권위적이지 않은, 예배당다운 곳이길 원했다”며 “다음세대와 기성세대가 함께 어울리고 서로 소통하며 신앙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고 밝혔다.

또 한 가지 중요하게 생각한 건 지역사회와의 조화 그리고 소통이었다. 누구나 찾을 수 있는 교회가 되길 바랐다. 울타리 대신 교회 건물 중간에 길을 내 주민들이 편히 오갈 수 있도록 했다. 지하 1층에는 일반 카페와 ‘키즈카페’도 만들었다. 교회 앞마당과 연결된 카페는 인근 산을 찾는 등산객들에게 쉼터가 된다. 카페 바로 앞에는 황톳길도 있다. ‘숨 쉬는 길(숨길)’로 명명된 이 길은 전북 부안에서 가져 온 100% 천연 황토로 지난해 교인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었다. 교회를 찾는 이들이 쉼과 함께 자연스레 복음을 접할 수 있도록 공간 구조에 고심한 흔적이 교회 곳곳에서 엿보였다.

성도에게 간 떼어준 목사님

초대교회에는 특별한 두 가지가 더 있다. 이탈리아 유명 예술가 미켈란젤로의 벽화 ‘아담의 창조’를 원형 그대로 형상화한 조각상과 ‘평화통일의 종’이다. 조각상 반대편엔 같은 재질의 십자가 조형물이 있는데 구원을 형상화했다. 그사이에 예배당으로 오르는 길이 있고, 십자가의 길을 형상화한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예배당 꼭대기 십자가 탑 밑에 ‘평화통일의 종’을 만날 수 있다.

공간마다 특별한 의미가 담긴 초대교회는 2018년 ‘국민일보 교회건축 문화대상’을 받았다. 초대교회에는 특별한 사연도 있다. 2021년 강 목사가 간암 투병 중인 교회 성도에게 간을 이식해준 일이다.

한사코 간 이식을 거절한 성도에게 강 목사는 “목사는 영적 아버지인데 어찌 영적 자녀의 아픔을 알고도 가만히 있을 수 있겠냐”며 설득했다. 수술을 앞두고 매일 1만5000보씩 걸으며 최적의 몸 상태를 만들었다. 현재 강 목사와 성도 모두 건강한 상태다. 이날 강 목사와 함께 만난 이정환(64) 장로는 당시를 회상하며 “걱정하는 마음에 처음에는 반대도 했지만, 목사님의 기도와 결단을 보며 적극 지지해드렸다”고 전했다.

똘똘 뭉쳐 팬데믹 이겨낸 공동체

초대교회 성도들의 굳건한 믿음은 코로나 팬데믹 당시 진가를 발휘했다. 팬데믹에도 성도들은 신앙을 지켜내며 이탈하지 않았다. 오히려 헌금이 늘었을 정도다. 초대교회는 전 세대가 함께 드리는 예배를 중시한다. 강 목사는 교인들에게 한 달에 한 번은 온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 함께 예배드리도록 권면한다. 함께 예배드리며 자연스레 가정의 문제가 회복되고 신앙유산이 전수되는 기회로 삼기 위함이다.

“눌림에서 누림으로, 한숨을 제 숨으로, 염려를 찬송으로.” 강 목사가 늘 교인들에게 전하는 권면의 메시지다. 강 목사는 “간 이식 후 회복기를 거치며 제 숨을 제대로 쉬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며 “삶에 지쳐 영적으로 눌린 성도들이 하나님 안에서 평안을 누리고, 염려하기보다는 늘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송하길 바란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교회 이름 앞에 ‘하늘 뜻 이루는’을 붙여 부르는데 하나님께서 이곳에 교회를 세우신 뜻은 교회가 지역사회에 존재함으로써 지역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라는 것이 아닐까 한다”며 “물이 흘러내려 곳곳마다 과실을 맺는다는 에스겔서 말씀처럼 산 위의 초대교회에서부터 흘러내리는 은혜의 생명수가 이 마을을 하나님의 나라로 변화시켰으면 좋겠다는 꿈을 꾼다”고 덧붙였다.

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