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3월 열리는 상장사 정기 주주총회장은 ‘창과 방패’의 싸움터가 됐다. 회사 측은 외국계 행동주의펀드의 공격을 막아내느라 진땀을 흘리는가 하면 이를 표방한 토종 사모펀드가 소액주주와 세를 불려 지배구조를 흔드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19일 의결권 자문사 서스틴베스트의 ‘2024 정기 주주총회 리뷰’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정기 주총에서 주주제안 안건을 상정한 상장사는 총 34개다. 이 가운데 국내외 행동주의펀드의 주주제안은 7개사 주총에서 다뤄졌다. 총 117개의 주주제안 중 ‘이사·감사 선임’이 61건으로 절반 이상(52.1%)을 차지했다. 이사회 내에 행동주의펀드 추천 인사를 앉혀 경영에 개입하려는 시도가 해마다 늘고 있다는 뜻이다.
안정적인 수익을 내면서도 분산된 지배구조를 가진 기업은 주요 타깃이 된다. 대표적인 기업이 KT&G다. 재계에서는 ‘행동주의펀드가 이름값을 높일 시험 무대가 KT&G’라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지난해 말 기준 KT&G의 최대주주는 기업은행으로 지분 7.11%를 보유하고 있다. 이어 국민연금공단(6.64%), 퍼스트이글(7.31%), 우리사주(3.66%) 순이다. 한 경제단체 소속 전문가는 “분산된 지분구조, 매년 1조원 안팎의 안정적인 영업이익, 성숙기에 접어든 사업 특성이 행동주의펀드 등의 먹잇감이 되는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2006년 ‘기업 사냥꾼’으로 악명 높은 미국의 헤지펀드 칼 아이칸으로부터 호되게 당했던 KT&G는 올해 주총을 앞두고서도 싱가포르 행동주의펀드 플래시라이트캐피탈(FCP)의 표적이 됐었다. 약 18년 전 당시 칼 아이칸 연합은 KT&G 지분을 6.6% 확보하며 2대주주에 등극했고, 주총에서 자신들이 추천한 인사를 이사회에 진입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후 1500억원에 달하는 시세차익을 거두고 손을 뗐다.
자본시장에서는 네이버가 KT&G 다음 타깃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지난해 말 기준 네이버는 국민연금(9.30%·최대주주), 블랙록(5.05%) 등으로 지분구조가 분산돼 있다.
전성필 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