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18일 기준금리 결정과 관련, “금융통화위원들이 여러 의견을 듣고 독립적으로 결정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연한 말인데 새삼 관심을 끈 것은 대통령실의 ‘금리 인하’ 분위기 조성 탓이다.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최근 방송에서 “근원물가가 2%대 초반으로 내려와 있다”며 “기준금리를 인하할 수 있는 환경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도 내수 진작을 위한 선제적 금리 인하를 주장하는 보고서를 냈다. 하지만 연구 차원의 주장과 대통령실의 발언은 시장이 받아들이는 무게의 차이가 크다. 자칫 한은의 독립적 금리결정 구조에 간섭한다는 오해를 살 수 있기에 자중해야 한다.
식품·에너지 가격을 제외한 근원물가 상승률은 지난달 2.2%다. 올 1~5월 평균 2.4% 상승률에 비해 하향 추세이긴 하다. 대통령실로서는 자영업자 대출 연체율이 12년 만에 최고로 치솟는 등 고금리 장기화에 따른 내수 침체 와중에 반가운 소식으로 받아들일 만하다. 하지만 근원물가 안정만으로 금리 인하 기대감을 피력하기엔 체감 물가 및 민생 상황이 결코 녹록지 않다. 한은에 따르면 우리나라 의식주 비용이 주요국 평균보다 1.6배 많이 든다. 생활비 부담이 어느 나라보다 크다는 얘기다. 물가를 감안한 실질 임금은 8분기째 마이너스다. 이 총재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둔화하고 있지만, 목표 수준에 수렴한다고 확신하기는 아직 어렵다”고 신중을 기하는 것도 체감 물가에 대한 염려 때문일 것이다.
지난달 가계대출 잔액은 약 1110조원으로 사상 최대였고 주택담보대출은 올들어 최대인 약 6조원이 증가했다. 부채 상황이 다시 악화되는 추세다. 총선 전 억눌러온 생활 물가 및 공공요금도 꿈틀거린다. 내수 회복을 위한 금리 인하 신호가 자칫 민생에 독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근원물가의 경우 최소 한 분기인 3개월 정도의 흐름을 지켜본 뒤 통화정책의 변화를 모색하는 게 적절하다. 금리는 한은 금통위에 맡기고 정부는 유통구조 개선, 농산물 수입 등 정책적인 면에 신경을 쓰기 바란다. 그게 물가 안정을 공고히 해 금리 인하를 앞당기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