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위한 당신의 사랑과 희생을 잊지 않겠습니다”

입력 2024-06-17 03:08
한 참전용사 유족이 지난 14일(현지시간) 미 텍사스주 쉐라톤 알링턴 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2024 한국전 미국 참전용사·가족 보은행사’에서 참전 가족의 생전 사진을 들고 참석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새에덴교회 제공

결초보은. 죽어서도 은혜를 잊지 않고 갚는다는 이 사자성어를 꺼낼 때마다 떠오르는 교회가 있다. 경기도 용인 새에덴교회(소강석 목사)다. 호국의 달 6월이 되면 한국을 위해 목숨 바쳐 싸웠던 참전용사들을 초청해 감사와 위로와 격려를 전하는 사역을 18년째 쉼없이 이어오고 있다. 미국과 호주 튀르키예 등 9개국 7000명(연인원)의 참전용사들은 이 교회의 헌신적인 섬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를 몸소 체험했다. 지난 14일(현지시간)부터 이틀간 미국 텍사스주 알링턴에서 이어진 올해 새에덴교회의 참전용사 보은행사를 국민일보가 동행 취재했다.

지난 14일 미국 텍사스주 쉐라톤 알링턴 호텔 그랜드볼룸으로 제복을 갖춰 입은 백발의 용사들이 입장했다. 모두 6·25전쟁에 참전했던 미군들이었다. 스무살 남짓한 나이에 전장을 누볐던 이들의 나이는 어느덧 90대 중반이었다.

이들은 지팡이와 휠체어에 의지해 느릿 느릿 발걸음을 옮겼다. 봉사자들은 저마다 예복을 차려입은 참전용사들에게 모자와 스카프를 선물하며 감사인사를 건넸다. 이들 선물엔 ‘We never forget your love and sacrifice(우리는 여러분의 사랑과 희생을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이미 세상을 떠난 참전용사 유족들은 행사장 입구에 마련된 아버지와 삼촌 등 생전의 사진이 담긴 액자를 들고 행사장에 들어왔다.

새에덴교회가 마련한 ‘2024 한국전 미국 참전용사·가족 초청 보은 행사’에서다.

교회는 2007년부터 18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참전용사 보은 행사를 열고 있다. 초창기부터 참전용사를 국내로 초청해 왔던 교회는 최근 들어 고령의 참전용사들의 건강을 고려해 현지 방문 행사와 국내 행사를 병행하고 있다.

희망의 봄 되새긴 ‘보은의 밤’

행사는 한미 양국 국가 제창과 전사자를 위한 묵념으로 막이 올랐다. 참전용사와 가족, 새에덴교회 관계자들과 주요 인사 등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행사는 영어로 진행됐다.

리처드 캐리(97) 예비역 미군 중장과 함께 행사장인 그랜드볼룸으로 들어온 소강석 목사는 영웅들을 위한 감사의 메시지를 영어로 전했다.

“우리의 영웅인 참전용사와 가족을 모시고 만찬회를 갖게 된 걸 큰 영광과 특권으로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이 전쟁의 참상을 딛고 희망의 봄을 열 수 있었던 건 하나님과 한국을 위해 목숨 걸고 싸워주신 참전용사들 덕분이었습니다. 이 자리를 통해 한미 우호가 증진되기를 바라며 다시는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 모두가 사랑과 평화의 징검다리가 되길 기대합니다.”

전사자와 실종자, 전쟁 포로를 위한 추도·추모식은 예비역 해군 제독인 김종대 장로가 인도했다. 후두암 후유증으로 말을 하지 못하는 김 장로는 김세현 집사의 도움을 받아 위로와 감사의 뜻을 표했다.

행사장 전면 LED 모니터에는 6·25전쟁 중 전사하거나 실종된 이들의 사진이 띄워졌다. 일일이 이름과 계급, 전사·실종 날짜가 소개되자 참석자들 사이에선 짧은 탄식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윤 대통령 “교회의 헌신에 감사”

윤석열 대통령은 친서를 보내 새에덴교회와 참전용사의 헌신에 감사의 표했다. 친서는 정영호 미국 휴스턴 총영사가 대독했다.

윤 대통령은 “18년째 보은행사를 이어오는 새에덴교회 소강석 목사님과 성도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린다”면서 “오늘날 대한민국이 누리는 자유와 인권, 평화와 번영은 참전용사 여러분의 희생과 헌신 위에 이룩됐다. 저와 대한민국 국민은 여러분의 숭고한 희생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새에덴교회 주일학교 학생인 김헌영(11)군과 최아인(9)양이 한복을 입고 전한 감사 인사는 참석자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이들은 “18년 동안 여러분을 초대한 걸 행운으로 생각한다” “여러분의 헌신으로 우리는 자유와 희망과 꿈을 얻었다. 영원히 기억하겠다”고 다짐했다.

한편 국가보훈부는 이날 참전용사 15명에게 ‘평화의 사도메달’을 수여했다.

우연한 만남, 보은의 시작

새에덴교회 보은 행사의 시작은 우연한 만남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소 목사가 2007년 1월 미국을 방문했을 때 리딕 나다니엘 제임스라는 흑인 참전 용사를 만난 걸 계기로 참전용사를 위한 보은 행사가 첫발을 뗐다.

올해 행사를 포함해 총 18차례에 걸쳐 참전용사 초청 행사가 이어졌다. 2011·2013·2014·2022년에는 한 해 두 차례 초청 행사를 열었다. 지난해에는 세 차례 행사를 진행했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2021년에는 줌(Zoom)과 메타버스를 활용해 온라인으로 전 세계 참전용사와 만나는 새로운 시도도 했다. 그동안 교회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과 캐나다 호주 필리핀 태국 튀르키예 콜롬비아 등 9개국에서 7000명(연인원) 가까운 참전용사를 직접 만나 보은 행사를 베풀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단일 교회가 이토록 긴 기간 동안 참전용사와 유족을 섬긴 사례는 극히 이례적이다. 올해도 두 차례 보은 행사를 진행한다.

미 텍사스주 알링턴 방문 행사를 비롯해 오는 23일 새에덴교회 본당에서도 ‘6·25전쟁 상기 74주년, 참전용사 초청 나라 사랑 보훈음악회’가 열린다. 소프라노 서선영이 가곡 비목을 부르고 이 교회 장로인 가수 남진과 미스트롯 출신 김의영, 정미애가 특별 공연을 선보인다. 지상작전사령부 군악대 특별 연주도 예정돼 있다.

알링턴=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