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개발국 아닌 소비국 전락 우려… 클러스터 조성 고려를”

입력 2024-06-14 01:14

세계적인 ‘디지털 강국’ 한국은 인공지능(AI) 시대에 별다른 경쟁력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부실한 인프라, 저조한 투자, 낮은 AI 리터러시 등이 시급하게 풀어야 할 과제로 지목됐다. 전문가들은 AI 산업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한국의 장점을 살린 AI 개발, 대국민 AI 경험 확대 등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AI 전문기업 아크릴의 박외진 대표이사는 13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빌딩 컨벤션홀에서 열린 2024 국민공공정책포럼의 패널발표 및 종합토론에 참석해 AI 기술의 현주소를 설명하며 “한국은 노력해야 할 부분이 상당히 많다”고 단언했다.

박 대표는 “AI 기술은 모델이라 말하는 ‘알고리즘’, 모델이 실행되도록 도와주는 ‘인프라’(반도체·데이터 등), 그리고 이 두 가지가 실행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이터 센터’ 3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며 한국이 특히 알고리즘과 인프라 분야에서 부족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인프라 분야의 데이터 문제를 예시로 들었다. 박 대표는 “빅테크가 주도하는 대규모 언어모델(LLM·Large Languge Model) 시대의 AI 학습에는 데이터의 질에 따라 확연한 차이가 난다”며 “감사원은 (한국의) 데이터 유효성이 30% 부실이라 하는데, 시장 체감은 50%”라고 말했다.

감사원은 지난달 ‘지능정보화사업 추진 실태’ 감사 결과에서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의 관리 부실로 2020~2021년 구축한 AI 데이터 360종 중 122종(사업비 1148억원)의 저품질로 활용도가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또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등 빅테크 주도의 자본경쟁보다는 한국의 강점과 문제의식을 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화상치료 전문병원과 ‘화상 진단 의료 AI’ 협업 사례를 소개하며 “중소 스타트업이 할 수 있는 일도 충분히 있다”고 했다. 또 “한국만이 가진 K팝 등 우리만 가지고 만들어갈 수 있는 콘텐츠가 무엇인지 고민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국민적 AI 경험 확대, AI 리터러시 교육의 필요성도 언급했다.

이창훈 삼일회계법인 파트너는 “우리나라가 AI 기술 발전을 따라가지 못해 소비국으로만 전락할까 두렵다”고 운을 뗀 뒤 “노동 없는 세상이 왔을 때 AI로 인한 충분한 부를 보유해야 한다”고 했다. 이 파트너는 “우리나라는 정보통신(IT) 강국이지만 AI는 선두 국가들에 비해 도입률이 낮다”며 “중소·중견 기업은 AI 투자는커녕 디지털 전환도 못한 곳이 많다”고 덧붙였다. 이어 “실패를 회피하는 기업 문화가 걸림돌이 돼 적극적 투자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정부는 AI 전방산업(금융·제조·유통 등 수요기업 측면)의 AI 전환을 유도하면서 중소·중견기업에 제도적 지원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해외 모범 사례도 제시했다. “싱가포르는 (정부의) AI 민간 도입 확산전략 중 하나로 100대 과제를 제시하고, 중소기업이 기술을 요청하면 연결시켜준다”며 “한국도 AI 산업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공급자-수요자를 연계하고, 중소기업은 산업별 AI 전환 클러스터를 꾀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AI 기술이 인간을 위협하지 않고, 성과가 적절히 분배되기 위한 고민도 선행돼야 한다. 여러 부작용과 딜레마 상황에 대해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화수 카이스트 교수는 AI 무기화에 대해 “인간 생명과 존엄성을 지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통제 규범을 하루빨리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독일은 AI가 인간 생명과 관련된 의사결정을 못 하도록 하는 선언을 했다”며 “트롤리 딜레마처럼 ‘자율주행차가 4명을 구하기 위해 1명을 죽이는 게 가능한가’ 같은 질문에 대해 답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했다.

권중혁 김성훈 윤예솔 최원준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