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현지시간) 미얀마 최대 도시 양곤에서 북서쪽 외곽에 위치한 작은 마을 입구. “밍글라바(안녕하세요).” 많은 미얀마 주민들이 나와 인사를 건넸다. 낯선 방문객이지만 기독교인이기에 더 반가워하는 것이라고 옆에서 귀띔했다. 동행한 현지 선교사는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광경이라는 것이다.
뿌리 깊은 불교 국가인 미얀마의 복음화율은 5% 안팎으로 알려져 있다. 기독교 역사는 200년 정도 됐지만 국민 생활 깊숙이 불교의 영향력이 미치고 있다. 기독교 선교사들의 활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미얀마 선교의 새로운 전기가 마련된 건 뜻밖의 사태 때문이다. 2021년 코로나 팬데믹에 이은 군부 쿠데타가 불씨가 됐다. 정권을 잡은 군부세력은 전방위적으로 국민 삶을 통제했다. 이후 미얀마인들의 삶의 질은 크게 악화됐다. 해외와의 교류는 물론 자유로운 언로가 차단됐다. 물가는 치솟고 국민소득은 곤두박질쳤다. 금융기관은 유명무실해졌다.
바로 이때 반군부 투쟁을 주도한 세력은 미얀마 전체 인구의 13%에 불과한 ‘카렌, 친, 카야, 카친’ 등 소수민족이었다. 이들 민족의 공통분모는 이른바 ‘기독교 민족’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시민방위군’을 조직해 무력 투쟁을 벌이는가 하면 탄압받는 미얀마 국민의 실상을 전 세계에 알리며 지원을 요청했다. 현재 미얀마 임시정부(NUG) 수뇌부는 대부분 기독교인으로 구성돼 있다.
현지에서 만난 에스더(29)씨는 “국민 편에 서 있다고 여겨지는 세력 중심에 크리스천이 있다는 사실이 미얀마인들의 기독교 인식 변화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서 “과거에 팽배했던 반감은 거의 사라졌고 ‘우리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퍼졌다”고 전했다. 반면 친군부 성향의 불교에 대해선 반감이 커지고 있는 분위기다. 불교 세력이 윤회사상을 퍼뜨리면서 국민이 군부에 순응할 것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급변하는 분위기 속에서 현지 선교계의 입지가 커지는 동시에 사역이 바빠지고 있다. 선교사들은 마을에 들어가 한동안 유치원, 방과후교실 등을 운영하며 지역주민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했다. 학용품·교복 등을 지원하는가 하면 놀이터·운동장 보수, 보건위생 환경 개선에도 힘을 쏟았다. 이어 주일학교, 성인 예배 등을 시작하면서 전도에 매진한 결과 예상을 뛰어넘는 열매를 맛보고 있다.
대표적 선교단체인 여호수아선교회의 경우 쿠데타 전 100명이 채 안 됐던 성도 수가 최근 300명을 넘어섰다. 또 다른 선교 단체는 매년 20명에 불과했던 세례 성도가 최근 들어 50명을 넘어섰다. “미얀마 선교 200년 만에 맞이하는 전환기”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현지에서 사역 중인 조 베드로 선교사는 “앞으로도 복음의 씨앗을 마음껏 뿌리고 이를 통해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양곤(미얀마)=글·사진 최경식 기자 ks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