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울했던 시절, 나를 잊고 양떼를 품다

입력 2024-06-12 03:05

‘목민(牧民)’.

고영근(1933~2009) 목사가 일생을 바쳐 펼쳤던 목회를 표현한 단어다. 목회자가 백성의 자리에서 그들과 함께하며 신앙을 돌봐야 한다는 뜻을 품고 있다. 한국교회 선교 140주년을 맞이해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 총회가 인물연구를 펼치면서 고 목사의 목민 정신이 회자되고 있다.

1933년 평안북도 의주에서 태어난 고 목사는 목회자 교육과 부흥회를 통한 복음 선포에 헌신한 인물로 박정희정권에 불응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정권을 겨냥한 설교를 하다 구속된 것을 시작으로 25차례나 투옥·연행되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고 목사는 민중과 함께한 목회자로 평가받는다. 그는 지역의 총가구 수를 비롯해 인구수와 직업을 파악하고 과부와 병자 현황 등을 분석하고는 맞춤 사역을 펼쳐갔다. 교회 밖으로 찾아 나가는 방식이었다. 지역 인근 보육원과 교도소를 방문해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처지에 관심을 두고 사역을 펼쳤다. 고 목사는 생전 “사회 속에 있는 교회가 어찌 사회에 대해 무관심할 수 있는가”라며 “양 떼가 굶으면 나도 같이 굶고 양 떼가 울면 나도 같이 울겠다”고 말했다. 민초들을 향한 사랑을 엿볼 수 있다.

예장통합 역사·선교유산회복위원회(위원장 김성수 목사)는 11일 서울 종로구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에서 한국교회사포럼을 열고 고 목사와 같이 근현대사에서 고군분투했던 목회자의 삶을 소개했다. 이 자리에선 김치영(1925~2000) 목사의 삶도 재조명됐다.

1925년 경상북도 의성군에서 출생한 김 목사는 ‘불편함의 목회’로 유명하다. 1950~1990년대 대구 지역에서 주로 활동한 그는 좀 더 좋은 환경의 목회를 추구하지 않고 빈민·병자·개척 사역에 진력했다.

김 목사는 죄인 된 인간 현실에 대한 각성을 비롯해 철저한 회개와 심판을 대면하는 결단을 강조했다. 번영과 성장을 바라는 축복 중심의 복음과는 사뭇 다르다. 그의 가르침은 근원적인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불편한 내용이었다.

김 목사는 불편함을 교인과 제자들에게만 전하지 않았다. 되레 불편함을 겪는 것에 앞장섰다. 김 목사의 아들인 김동선씨는 회고록에서 “김 목사님은 이 세상에서 뭔가 편안하지 않은 마음을 가지고 사셨다”며 “이는 부정적으로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라 신앙적이지 못한 세상 분위기에 쉽게 적응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동규 기자 kky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