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를 투표로 뽑는다는 발상은 이승만 정권이 무너진 뒤 제2공화국에서 처음 구체화했다.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 퇴임 후 사법부가 정치 권력에 굴복하는 모습을 본 여론은 사법권 독립을 지켜줄 장치로 법관 선출제를 지지했다. 대법원장과 대법관을 국민이 선출해 대통령이나 국회가 판결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게 하자는 거였다.
선거야말로 정치적인 행위여서 선출된 법관이 오히려 정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리란 반론이 많았지만, 당시는 권력의 사법 개입을 막는 게 급했다. 선거인단 간접선거로 방식을 정했는데, 선거 전날 5·16 쿠데타가 터져 법관 선출은 결국 무산됐다. 법관의 선거운동을 금지했는데도 사법부가 파벌로 나뉘어 극심한 분열상을 보였다는 당시 분위기만 전해지고 있다.
이후 오래 잊고 지낸 법관 선출제를 다시 꺼낸 건 2012년 통합진보당이었다. 19대 총선에서 “사법이 정치 수단으로 변질됐다”며 법원장 선출제를 공약했다. 정치로부터 사법을 지키기 위해서라던 이 공약은 “가카 빅엿” 발언에 법복을 벗고 입당한 서기호 전 판사가 주도했다. 정치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던 이가 전면에 서서인지 반향을 얻진 못했다.
다시 10년이 흘러 2021년 정경심씨 항소심에서 유죄 판결이 나오자 지지자들이 청와대에 ‘재판부 탄핵’과 함께 ‘법관 선출제’ 청원을 제기했다. 판결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 판사 임용 방식을 바꾸자는 주장을 공공연히 편 것이다. 진보 진영의 한 변호사는 “재판은 선출되지 않은 집단이 수행하는 고도의 정치 행위”라며 이를 선출제로 양성화하자는 논리를 펴기도 했다.
이렇게 정치권 주변부에서 회자되던 법관 선출제를 이번엔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직접 꺼내 들었다. 이재명 대표와 직결된 이화영씨 재판에서 중형이 선고되자 SNS에 “심판도 선출해야”라고 썼다. 역시 판결에 대한 불만을 표출한 것이었다. 60년 전의 법관 선출제는 정치의 사법 개입을 막기 위한 거였는데, 정치의 영향력을 거꾸로 강화하려는 정반대 목적에서 다시 거론되고 있다. 위험한 일이다.
태원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