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야” 이웃 살린 고교생 22층→1층 집집마다 문 쾅쾅

입력 2024-06-07 04:57
지난 1일 경기 남양주 진전읍 아파트에서 화재가 발생하자 22층부터 1층까지 집집이 문을 두드려 주민들에게 화재 사실을 알려 대피를 도운 광동고 2학년 김민준(16)군(가운데)이 지난 5일 남양주북부경찰서로부터 표창장을 받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남양주북부경찰서 제공

최근 아파트 화재 현장에서 한 고등학생이 꼭대기 층부터 걸어 내려오며 집집이 문을 두드려 주민 대피를 도왔다. 경기 남양주에 사는 광동고 2학년생 김민준(16)군이다. 김군은 6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사람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화재는 지난 1일 오후 9시25분쯤 경기 남양주 진접읍에 있는 지상 22층짜리 아파트에서 발생했다. 이 아파트 21층에 사는 김군은 당시 방에서 온라인으로 친구들과 게임을 하고 있었다.

김군이 무언가 타는 냄새를 맡고 현관문을 열었을 때 복도는 연기로 가득 찬 상태였다. 불이 났다고 직감한 순간 김군은 ‘우리 아파트에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많이 살고 계시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 어르신들은 불이 난 줄도 모르고 잠든 채 있거나, 아무래도 거동이 불편해 재빨리 움직이기 어려울 것 같았다.

김군은 일단 방에서 자고 있던 아버지를 깨워 함께 집 밖으로 나왔다. 이들 부자는 주민들에게 화재 사실을 알리기 위해 바로 위층이자 맨 위층인 22층으로 올라갔다. 연기는 이미 그곳까지 차올라 있었다. 김군 부자는 맨 아래 1층까지 22개 층을 비상구 통로로 뛰어 내려가며 각 층 현관문을 두드리고 “불이야!” 소리쳤다.

어디서 시작됐는지 알 수 없는 연기는 아파트 전체를 가득 채웠다. 유일한 탈출구인 비상구 통로 역시 연기로 가득했다. 제 한 몸 챙기기에도 급박한 상황에서 김군 부자는 매캐한 연기를 뚫고 주민들이 건물을 빠져나가도록 도왔다. 얼굴과 몸을 보호할 수단도 없이 가벼운 옷만 걸친 상태였다. 김군 부자의 활약과 소방 당국의 신속한 진압으로 사상자는 나오지 않았다. 화재는 2층에서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20개 층 넘게 계단으로 내려오며 일일이 문을 두드리며 소리치는 게 힘들지 않았냐는 기자의 질문에 김군은 “그때는 몰랐는데 (아파트에서) 나오고 나서는 힘들더라”고 말했다. 김군은 당시 호흡곤란 증상으로 병원에 후송됐다. 구호 과정에서 연기를 많이 마신 탓이었다. 현재는 완전히 회복했다고 한다.

광동고 2학년인 김군은 지난 5일 경기 남양주북부경찰서로부터 표창장을 받았다. 김군이 신속한 초기 대응으로 인명 대피를 유도하고 재산 피해를 막았다고 경찰은 평가했다. 오지형 서장은 표창을 전달하며 “시민 안전을 위해 헌신과 용기를 보여준 김민준 학생에게 깊은 감사를 전한다”고 말했다.

김군은 국민일보에 “표창장까지 받을 줄은 몰랐다”며 “사람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멋쩍어했다. 인터뷰 내내 시종일관 겸손한 모습이었다. 그는 상을 받은 사실에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막상 (표창장을) 받으니까 기분 좋다”고 해맑게 웃었다. 이어 “같은 아파트에 사는 분을 근처 분식집에서 만났다. ‘그날 불이 났다고 알려줘서 고맙다’고 말씀하셨다”며 뿌듯함을 전했다.

강창욱 기자 김민경 인턴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