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민경배 (6) 폭탄 파편 맞고 혼절… 정신 들자 “주님 감사합니다”

입력 2024-06-10 03:04
1951년 7월 경남 사천 기지에서 출격하는 무스탕 전투기. 국민일보DB

1950년 7월 2일 아침. 교회에 가던 길 미군 공습이 시작됐다. 저 멀리 경찰서에 폭탄이 떨어져 폭운이 하늘로 치솟았다. 불길과 폭운에 사람 몇 명이 튀어 올라가는 것도 보였다. 그 찰나, 쉐쉐 소리 나는 폭탄 투하 소리를 듣고 나는 정신을 잃었다. 구들장을 뜯었을 때의 흙냄새 같은 포격 냄새, 후끈한 검은 폭격 연기가 천지에 가득 뭉게뭉게 찼다. 정신을 잃은 와중에도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하는 소리를 들었다. 내가 하는 기도였다. 사방이 어둡고 연기에 싸이고 그 쌓인 폭운이 천막처럼 하늘로 올라가는 것, 그것이 하늘을 가리고 하늘로 퍼져가는 것이 보였다. 어두웠다. 후끈했다. 두려움과 공포가 온몸을 휘감았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쓰러져 있었다. 뒤돌아보니 7m 정도 뒤에 폭탄이 떨어진 구덩이가 어렴풋이 보였다. 일어서려니 일어설 수가 없었다. 폭탄 재를 들이쉬며 벌벌 기어 냇가 언덕길 둑에 겨우 올랐다. 길거리에서 이불 하나를 주워 덮고 집까지 대략 150m를 반 시간 넘게 걸려 겨우 도착했다. 뒷문으로 들어서면 바로 그 옆에 방공호가 파여 있었는데 얼마 전 비가 와서 물이 가득 차 있었다. 거기 힘없이 몸이 굴러 떨어뜨렸다. 그랬더니 그 물이 곧 피로 변해 갔다. 등에 폭격 파편을 여럿 맞은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은 바로 그 폭격 현장에서 폭탄을 곧장 맞지 않은 덕분이다. 대신 폭탄 파편 수천 개가 사방에 날아가고 그런 것들이 내 등에 꽂혔는데 놀랍게도 머리나 척추에는 하나도 박히지 않았다. 척추 양쪽 편에 저 하늘 높이에서 떨어진 폭탄 파편이 나뉘어 박힌 것이다. 하나님의 손길이 아니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것인가. 이런 기적이 또 어디 있을까. 나는 뼈 하나 상한 곳 없이 살에 파편이 여섯 군데 박히고 살아났다. 지금 생각해도 믿기지 않는 일이다.

폭격에 놀라 개울에 뛰어 내려가 피했던 어머니는 한 시간가량 후에 집에 휘청휘청 돌아오셨다. 그리고 나를 보고는 너무나 놀라 어쩔 바를 모르시다가 덮어놓고 뒷문으로 나를 업고 끌며 큰 길가로 나갔다. 아직 폭운이 어둑한 거리 저 멀리에 쓰리 쿼터 짐차가 하나 서 있었다. 거기에는 벌써 폭격당한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발이 하나 잘려나간 사람, 가슴이 터진 사람, 죽은 사람들이 실려 있었다. 어머니는 나를 거기 올려놓고 함께 타셨다. 그리고 창경궁 앞 서울대병원에 달려갔다. 병원은 이미 폭격 맞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의사도 약도 모자란다고 하는 형편이었다. 내가 탄 차는 결국 을지로 6가에 있던 당시 스웨덴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거기도 폭격 맞은 상처에 바를 페니실린 같은 약은커녕 수술을 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빨간 약만 겨우 바르고 붕대를 감고 돌아설 수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었다. 막막했다.

우리 차는 결국 삼각지까지 와서 모두 내려놓았는데 거기서 우리 집까지 어머니가 나를 데리고 갈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저 멀리 손수레가 하나 보였다. 어머니는 어떻게 그것을 끌고 와서 나를 올려놓고 그것을 혼자 끄셨다. 철도 길을 건너 집까지 겨우 다다를 수 있었다. 작은 체구의 약한 어머니가 나를 이렇게 끌고 다니시며 집까지 데려오신 것이다.

정리=손동준 기자 sd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