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경북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 막대한 양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발표한 데 대해 기업들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우세하다. 기업들이 스스로 검증하지 못한 상황에서 섣부르게 장밋빛 미래를 그리긴 조심스럽다는 이유에서다. 유신시대에 경제성이 낮다며 석유 개발을 포기했던 전례를 떠올리며 거리를 두려는 모습도 포착된다.
국내 정유·화학 기업들은 지난 3일 정부의 발표를 통해서야 관련 소식을 접한 것으로 전해진다. 보통 광구 개발이나 석유 탐사 사업의 경우 한국석유공사의 입찰 정보를 통해 기업들이 예측한다. 향후 입찰 참여 가능성을 따져보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번 탐사 시추 계획은 정부가 발표하기 전까지 기업들의 레이더망에서 벗어나 있었다. 석유공사는 업계에도 철통 보안을 지키려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
4일 정보공개 포털에 따르면 석유공사가 올린 관련 사업 문서들은 대부분 비공개로 처리됐다. 문서의 제목들도 통상적으로 진행해온 대륙붕 탐사 사업 문서들과 큰 차이점이 없다 보니 사업에 착수했더라도 업계에서 파악하기 어려웠다. 석유공사는 보안을 위해 사업에 ‘대왕고래’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정보공개 포털에 대왕고래라는 이름이 등장한 것은 지난해 11월 27일이다. ‘대왕고래 시추를 위한 시추선 용선 용역 진행상황 보고’라는 문서를 통해 해당 사업에 대한 단서를 제공했을 뿐이다.
이후 석유공사는 올해 1월 9일자 ‘국내 동해 제8/6-1광구 북부지역 대왕고래 구조 탐사정 시추 위치 선정’이라는 문서를 통해 포항 영일만 앞바다가 시추 위치라는 점을 처음 알렸다. 이후 석유공사는 지난 3월부터 ‘국내 8/6-1광구 북부지역 대왕고래-1 탐사시추’라는 용어를 붙여 물리검증 용역 등의 입찰을 추진했다.
국내 기업들은 이번 사업이 본궤도에 오를 때까지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48년 전에도 석유 개발 사업이 좌초된 적 있기 때문이다. 지난 1976년 1월 15일 고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영일만에서 석유를 발견했다”고 대대적으로 발표했다. 그러나 정부가 발견한 검은 액체는 원유가 아닌 경유 함유량이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이후 진행된 시추 작업에서도 원유 매장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전문가들의 진단이 나왔다. 정부가 나서서 시추공 11개를 뚫었지만 원유는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업계 관계자는 “역사가 되풀이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기업이 앞장서서 기대감을 높일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전성필 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