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베니스비엔날레 미술전 예술감독인 남미 출신 아드리아노 페드로사는 전시 주제로 ‘외국인은 어디에나(Foreig ners Everywhere)’를 내걸었다. 이 제목은 프랑스 작가그룹 클레어 퐁텐의 작품명을 차용한 것이다.
덕분에 더욱 유명세를 얻은 작가그룹 클레어 퐁텐의 개인전 ‘아름다움은 레디메이드’가 열리는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 아뜰리에 에르메스에 관람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베니스비엔날레 야외 전시장인 아르세날레 바닷가에 구호처럼 걸렸던 이 작품이 화이트큐브에서는 어떻게 전시됐을까 하는 궁금증 때문일 것이다.
클레어 퐁텐은 이탈리아 출신 이론가 풀비아 카르네발레와 영국 출신 미술가 제임스 손힐이 함께 만들었다. 이름은 프랑스의 인기 문구 브랜드에서 땄다. 상표명을 차용한 것에서 보듯 둘은 작가명을 통해 천재적이고 영웅적인 예술가상을 버리고 기성품 같은 이미지의 예술가로 살겠다는 선언을 한 것이다. 미술의 상업성에도 반기를 든 그들의 전시가 예술을 후원하는 프랑스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에서 후원하는 전시장에서 열리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기존에 존재하는 이미지를 차용하는 방식은 이번 전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클레어 퐁텐은 중세 기독교 벽화를 액정이 깨진 화면으로 찍은 뒤 이를 다시 찍은 작품을 내놓았다. 결과적으로 중세의 벽화는 저해상도, 액정의 깨진 자국은 고해상도로 표현돼 그 생경한 대비가 오히려 신선하다. 그 이미지를 라이트박스 광고판 형식으로 전시함으로써 사적으로 소비되는 핸드폰 화면과 공공 공간에서 광고로 보이는 시각문화간의 경계를 허문다.
이번 전시에서 네 점이 출품된 ‘외국인은 어디에나’(2004~)는 클레어 퐁텐의 정치적 지향성을 드러내는 대표작이다(사진). 전 세계적으로 이민자와 난민이 증가하는 현실 속에서 여전히 뿌리 깊은 이민자에 대한 뿌리 깊은 차별과 편견에 경종을 울린다. ‘예술은 정치적 난민들의 장소가 된다’고 선언했던 클레어 퐁텐의 아시아 첫 개인전인 이번 전시는 9일까지.
손영옥 미술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