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시대가 열리면서 폐배터리의 범람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 폐배터리를 그대로 자연에 방출하면 사고나 환경오염이 불가피하지만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 폐배터리의 경제적 가치에 주목한 기업들은 폐배터리 재활용·재사용 시장에 앞다퉈 진출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등록된 전 세계 전기차는1406만대로 전년 대비 33.4% 증가했다. 중국 업체뿐 아니라 메이저 완성차 기업들도 2000만~3000만원대 전기차를 내놓으면서 대중화에 속도가 붙고 있다.
자연스럽게 폐배터리도 늘 수밖에없다. 전 세계 전기차 폐차 발생량은2040년까지 연평균 33% 증가할 전망이다. 수명을 다한 전기차용 배터리는 중금속, 전해액 등을 포함하고 있어 폭발·화재 또는 토양 오염을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 폐배터리 처리 기술이 필요한 이유다.
기업들은 이런 폐배터리의 경제적 가치에 주목한다. LG경영연구원에 따르면 내연기관 차는 폐차시 1대당 50만~200만원밖에 못 받는 반면 전기차는 배터리의 잔존 성능, 배터리에서 추출 가능한 광물량에 따라 수백만원~1000만원의 가치를 지닌다. SNE리서치는 글로벌 폐배터리 재활용 시장이 연평균17% 성장할 것으로 추산했다.
성능이 초기 대비 20~30%로 떨어진 전기차용 배터리는 수명이 남았어도 교체해야 한다. 이를 수리해서 다시 쓰거나, 에너지저장장치(ESS)용 배터리로 재사용할 수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이 충북 오창 공장에 10만㎞ 이상 달린 전기 택시에서 뗀 폐배터리로 ‘전기차용 충전 ESS’를 만들어 설치한 게 대표적인 재사용 사례다.
수명을 완전히 다 해 재사용이 어려운 배터리는 재활용해야 한다. 파쇄해 ‘블랙 파우더’로 만든(전처리) 후 황산에 녹여서 희귀 광물을 뽑아내는(후처리) 과정을 거친다. 에코프로는 전처리와 후처리 기술을 모두 갖춘 에코프로씨엔지를 계열사로 두고 있는데, 지난달 30일 물류업체 현대글로비스와 폐배터리 시장 선점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고 3일 밝혔다. 에코프로는 해외 96개 곳에 거점을 둔 현대글로비스와 협력해 재활용할 폐배터리 확보에 필요한 물류경쟁력을 갖춘다는 구상이다.
성일하이텍은 4일 신규 폐배터리 재활용 공장인 ‘새만금 제3하이드로센터(3공장)’를 건립하고 준공식을 열기로 했다. 성일하이텍 1·2·3공장의 니켈·코발트·리튬 생산량을 합치면 전기차 약40만대 생산이 가능하다. SK에코플랜트는 자체 재활용 기술력이 일정 궤도에 올랐다는 판단에 기술 확보를 목적으로 확보했던 미국 폐배터리 재활용 회사 어센드엘리먼츠 지분 매각을 추진 중이다. 두산에너빌리티, 고려아연, 영풍 등도 폐배터리 재활용 사업에 뛰어든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 전환의 속도가 예상보다 느려졌다는 데 동의하지만 전기차 전환이라는 방향성에 대해서는 정부와 업계 모두 의심하지 않고 있다”며 “폐배터리 시장은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황민혁 기자 ok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