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 침체에 실적 경고등 켜진 정유업계

입력 2024-06-04 03:57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과 러시아 등 주요 23개 산유국 협의체인 ‘OPEC+’가 감산 연장에 합의하면서 올해 하반기 유가를 떨어뜨릴 것으로 예상됐던 큰 변수 하나가 사라졌다. 그러나 정작 국내 정유사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국제 유가보다 실적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칠 요인으로 ‘수요 침체’를 꼽고 있기 때문이다. 정제마진이 손익분기점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실적 개선이 어려울 전망이다.

OPEC+는 2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장관급 회의를 마친 후 “현재 산유량 수준을 내년 1년간 연장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OPEC+는 현재 전 세계 수요의 약 5.7%에 해당하는 1일 평균 586만 배럴의 원유를 감산하고 있다. 이 가운데 366만 배럴은 OPEC+ 모든 회원국에 올해 말까지 할당된 공식 감산량인데, 이를 내년 말까지 1년 연장하기로 한 것이다. 나머지 220만 배럴의 자발적 감산분은 일단 오는 9월 말까지 3개월 연장하기로 합의했다.

OPEC+가 감산을 연장한 것은 국제 유가의 지속적인 하락세를 막기 위해서다. 두바이유는 지난 4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등 중동 지역 지정학적 위기에 배럴당 90달러 선까지 치솟았다가 최근 80달러 초반까지 떨어졌다. 또 최근 미국 셰일가스 시추업체의 생산량이 급증하면서 유가 하락을 부채질하고 있다.

수요 감소로 인해 국제 유가가 더 가파르게 하락할 수 있다는 전망도 우세하다. 중국의 경제 성장세가 꺾이는 등 전 세계적인 수요 침체가 발생하면서 수요가 줄고 있다. 이런 추세가 이어지면 공급 과잉으로 인한 추가적인 유가 하락이 나타날 수 있다. 산유국들은 감산을 통해서라도 추가 하락을 막을 상황인 셈이다.

국내 정유사들은 OPEC+의 감산 합의로 국제 유가가 상승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음에도 수요 침체라는 위기론이 더 치명적이라는 반응이다. 수요가 줄어든 상황이라 감산이 정유사 실적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다.

최근 석유제품 수요가 줄면서 싱가포르 복합 정제마진은 지난달 말 기준 배럴당 1.86달러를 기록했다. 지난 1분기(7.3달러) 대비 큰 폭으로 하락한 이후 지난달 회복세를 타긴 했지만 여전히 손익분기점(4~5달러)에도 못 미치는 상황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유례없는 수요 침체로 정유사들의 불확실성 큰 상황이라 감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전성필 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