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 ‘채상병 사건’ 스모킹건 확보·직권남용 입증 시험대

입력 2024-06-03 01:31
예비역 해병대원들이 2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전우의 묘역을 향해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사건 수사 외압 의혹과 관련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9개월째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채상병 사건’을 9개월째 수사 중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윗선 개입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은 크게 두 가지다. 통화내역 등 정황 증거를 넘어 구체적 지시 내용 등 ‘스모킹 건’을 확보하는 것과 까다로운 직권남용죄 입증 법리를 구성하는 일이다. 더불어민주당이 22대 국회 개원 첫날인 지난달 30일 ‘채상병 특검법’을 제출하는 등 사건을 신속하게 수사해야 하는 공수처의 부담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공수처는 지난해 8월 채상병 사건 수사 외압 의혹 고발장을 접수한 뒤 지난 1월 국방부 등을 압수수색했다. 지난 4월부터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을 시작으로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 등 핵심 인물을 잇달아 조사했다. 외압 의혹 출발점으로 지목된 ‘VIP(대통령) 격노설’을 뒷받침할 정황 증거도 여럿 확보했다. 김 사령관의 휴대전화에서 그가 해병대 고위 간부와 VIP 격노설과 관련해 나눈 대화 음성파일을 확보했다. 앞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은 김 사령관으로부터 격노설을 들었다고 공수처에 진술한 바 있다.

특히 공수처는 VIP 격노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지난해 7월 31일부터 국방부가 경찰에서 채상병 사건을 회수한 8월 2일 무렵 윤석열 대통령 등이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과 직접 통화한 기록도 확보했다.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의 직무 배제가 번복된 것도 석연찮다는 지적이다. 해병대는 지난해 7월 31일 오전 임 전 사단장에 대한 파견 명령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장관은 이날 오전 11시54분 ‘02-800’으로 시작하는 대통령실 전화를 받아 2분48초간 통화했다. 이후 이 전 장관은 임 전 사단장 복귀를 지시했다. 굳이 임 전 사단장 복귀를 지시할 이유가 있었느냐는 의문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다만 공수처가 확보한 통화 내역 자체는 간접 정황이라는 게 법조계 평가다. 당사자들의 구체적인 대화 및 지시 내용 등은 아직 드러난 게 없다. 박 전 단장이 격노설 중간 전달자로 지목한 김 사령관은 이런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법정 증거로 활용하기 어려운 전언 수준인 것이다.

윤 대통령이 격노와 함께 위법한 지시를 했다는 구체적 증거 확보 여부도 관건이다. 한 변호사는 “전언만으로는 입증이 어렵다. 국정농단 사건 때처럼 대통령 지시를 적은 업무 수첩이라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법리상 난맥을 돌파하는 것도 과제다. 직권남용죄가 성립하려면 지시를 받은 대상이 권리를 침해받거나 법령상 의무 없는 일을 해야 한다. 그런데 개정 군사법원법에 따르면 군사경찰은 군내 사망 사건에 수사 권한이 없다. 해병대 수사단에 애초 수사 권한이 없으므로 혐의자 축소 등 지시가 있었다고 해도 범죄 자체가 성립 안 된다는 게 이 전 장관 측 주장이다.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수사 권한이 애초 없었다면 혐의자를 특정하지 말라는 것도 정상적 지시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며 “법리 다툼이 가능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김재환 기자 j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