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책 배우자에 사실상 징벌적 손배… ‘세기의 이혼’, 위자료 상향 기준될까

입력 2024-06-03 02:11
최태원(왼쪽)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연합뉴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항소심 판결은 1조3800억원대 재산분할뿐 아니라 전례 없는 초고액 위자료로 주목 받는다. 법조계에선 혼인 파탄에 책임 있는(유책) 배우자에게 사실상 징벌적 손해배상을 매긴 시대를 앞서나간 판결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판결 확정 시 그간 ‘너무 적다’는 평가를 받아온 이혼 사건 위자료가 대폭 늘어나는 시발점이 될 수도 있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가사2부(재판장 김시철)가 지난달 30일 선고한 위자료 20억원은 역대 최고 수준이다. 종전 이혼 사건 위자료 최고액은 5억원으로 알려져 있다.

향후 최 회장 측이 상고할 경우 최 회장 보유 SK㈜ 주식을 재산분할한 것과 함께 위자료 판단도 상고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 통상 이혼 사건에서는 위자료 액수가 3000만원 정도로 책정된다. 폭행 등을 저질러도 5000만원을 넘지 않는 게 일반적이다. 재산 규모와 기여도에 따라 천차만별인 재산분할과 달리 위자료는 정신적 손해에 따른 배상이다. 위자료 산정에서도 재산 규모를 고려하지만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편이다. 통상 교통사고 사망 위자료 기준이 1억원이다. 김현진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한국은 징벌적 손해배상 규정이 없고, 법원도 위자료 산정에 보수적인 편”이라고 설명했다. 한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재산분할보다 위자료 20억원을 보고 굉장히 놀랐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선 유책 배우자가 상대방에게 정신적 고통을 주는 행위에 경종을 울린 판결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판결이 전반적인 이혼 위자료 상향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수도권 한 판사는 “판결 확정 시 일반 사건에서도 이 판결을 제시하며 고액 위자료를 요구하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법관 출신 변호사는 “위자료가 어디로 튈지 모르게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따져볼 부분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재산분할 부분에선 노 관장 부친 노태우 전 대통령이 최 회장 부친 최종현 전 회장에게 300억원 자금 지원을 한 부분 등과 관련해 불법성 있는 재산을 귀속시키는 게 타당한지도 쟁점이 될 전망이다. 노 관장이 경영에 직접 관여하지 않았는데 최 회장 보유 주식을 전체 분할하는 게 맞는지에 대한 쟁점도 대법원에서 다뤄질 수 있다.

다만 대법원은 사실관계를 일일이 따지지 않는 법률심이란 점에서 ‘뒤집기’가 만만찮을 거란 관측도 있다. 한 부장판사는 “유책 사실은 확정됐으니 대법원이 위자료에 상한이 있다는 식으로 법리를 만들지 않는 한 파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봤다.

가정법원 판사 출신 이현곤 변호사는 “가사 소송에서는 재산의 합법성 여부를 일일이 따지지 않고 실질 기여도에 따라 판단한다”며 “재산 취득 방식과 무관하게 혜택을 한쪽만 봐서는 안 된다는 논리”라고 말했다. 대형 로펌의 한 변호사는 “재산 액수 산정 기준 등도 쟁점이 될 수 있지만 대법원에서 쉽게 손댈 수 있는 부분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2022년 국내 가사 소송 상고심 상고 기각률은 93.6%다.

노 전 대통령의 정경유착 의혹을 추가 수사하거나 비자금을 추징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공소시효가 지났고, 노 전 대통령과 최 전 회장 모두 사망해 증거 확보도 쉽지 않다. 노 관장은 이날 대리인을 통해 “항소심 판결만 선고된 현재 향후 상황에 이런저런 의견을 밝히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양한주 이형민 기자 1wee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