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시집 ‘나이트 사커’에는 ‘시네 키드’라는 제목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시의 내용을 간략히 설명하자면 영화관에 앉아 있는 화자의 눈앞에 두 개의 스크린이 평행하게 놓여 있다. 한쪽에는 빛, 다른 한쪽에는 어둠이 끝없이 펼쳐지는 중이며 화자는 빛과 어둠이 각각 과거 혹은 미래의 형태임을 알아차린다. 어느 쪽이 과거이며 미래인지 알려줄 수 없다는 방송이 흘러나오지만 화자는 스크린을 향해 눈을 감는다.
프랑스 철학자 베르그손은 ‘물질과 기억’에서 우리가 눈에 보이지 않아도 공간 속에 사물들이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으면서 왜 과거는 사라진다고 생각하는지 묻는다. 멋진 문장이지만 이런 의문이 들기도 했다. 공간 속의 사물들은 우리가 그곳에 찾아갔을 때 눈앞에 도래한다. 그때부터 사물은 나의 현재와 미래에 침투한다. 그러나 과거가 있는 곳으로 찾아갈 수는 없다. 과거가 어디에 보관되어 있는지 아는 사람이 있는가? 기억을 잃어버리면 과거도 잃어버리는 셈이다. 게다가 기억은 보존이 아니다. 왜곡이고 투영이다. 존재는 기억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기억을 믿을 수 없다면 대체 내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해야 하나. 본 적 없는 미래와 사라진 과거가 나의 현재를 지탱하고 있다.
꽃 한 송이에는 그 꽃이 이 자리에서 피어나기까지의 모든 계절과 땅의 움직임과 우주의 기억이 포함되어 있다. 꽃이 시들어 떨어지고 난 뒤 썩어서 땅의 일부가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주의 모든 곳으로 흩어져 사라질 미래 역시 꽃 한 송이라는 형체 속에 녹아 있다. 현재는 매우 불안정하고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대상이지만 이렇게 생각하면 사실 영원과 현재는 다르지 않다. 우리는 우리의 몸으로서 영원을 살고 있는 것이다. 짧고 덧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삶 역시도 사실은 영원과 다르지 않다. 내가 나의 몸으로서 영원을 살고 있고 다른 모두가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면 생의 모든 순간들이 소중해진다.
김선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