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63) SK그룹 회장이 노소영(63) 아트센터 나비 관장에게 이혼에 따른 재산분할액 1조3800억여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2심 재판부가 판결했다. 1심이 인정한 665억원에서 20배 넘게 늘어난 액수로 역대 최대 규모다. 1심과 달리 노 관장 측이 SK그룹 가치 증가나 경영 활동에 기여한 점을 인정한 결과다.
서울고법 가사2부(재판장 김시철)는 30일 “최 회장이 재산 분할로 1조3808억원, 위자료 20억원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분할 대상 재산 총액 4조115억원 중 35%를 노 관장 몫으로 인정하고 이를 현금으로 지급하라고 했다.
앞서 1심은 2022년 12월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현금 665억원의 재산분할금과 위자료 1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2심은 SK그룹 형성 및 성장에 노 관장 부친 노태우 전 대통령의 유무형적 기여가 있었음을 인정하면서 지급액을 대폭 늘렸다.
재판부는 “노 전 대통령 측으로부터 최 회장 부친에게 상당한 자금이 유입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가사·양육 측면의 가치도 인정됐다. 재판부는 “노 관장은 자녀 3명 양육을 전담했고 최 회장 모친 박계희 여사가 사망한 후 대체·보완재 역할을 했다”고 판단했다.
위자료 20억원은 전례 없는 액수로 평가된다. 재판부는 “최 회장이 부정행위 상대방인 김희영 티앤씨재단 이사장과 공개 활동을 지속하는 등 상당 기간 부정행위를 계속했다”며 “헌법이 보호하는 혼인의 순결과 일부일처제를 전혀 존중하지 않았다”고 질책했다. 또 최 회장이 2008년 11월 노 관장에게 보낸 자필 편지에서 ‘내가 김희영에게 이혼하라고 했다. 모든 게 내가 계획하고 시킨 것’이라고 적은 부분을 언급하며 “노 관장과의 혼인관계를 존중했다면 도저히 이럴 수 없다”고 지적했다. 노 관장은 2009년 5월 암 진단을 받았는데, 재판부는 이런 최 회장 행동이 정신적 충격을 줬을 것으로 봤다. 최 회장이 별거 후 김 이사장과의 생활에서 최소 219억원을 지출한 점도 인정됐다.
노 관장 측 김기정 변호사는 “일부일처제 주의에 대한 헌법적 가치를 깊게 고민한 아주 훌륭한 판결”이라고 말했다. 최 회장 측 대리인단은 “편견과 예단에 기반해 기업의 역사와 미래를 흔드는 판결에 동의할 수 없다. 특히 6공화국 비자금 유입은 전혀 입증된 바 없다”며 상고할 뜻을 밝혔다.
최 회장과 노 관장은 1988년 9월 청와대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2015년 최 회장이 혼외자녀 존재를 인정하며 이혼을 요구했고, 2017년 이혼 조정을 신청했으나 불발돼 ‘세기의 이혼 소송전’으로 번졌다. ‘가정을 지키겠다’며 이혼에 반대하던 노 관장은 2019년 12월 입장을 바꿔 맞소송(반소)을 냈다. 1심에서 최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약 1297만주) 중 절반과 위자료 3억원을 요구했던 노 관장은 항소심에서 청구 금액을 현금 2조원과 위자료 30억원으로 늘렸다. 노 관장은 지난해 3월 김 이사장을 상대로 30억원 손해배상 소송을 내는 등 장외 공방도 이어졌다.
양한주 김혜원 기자 1wee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