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형통하게 되었다고 말하곤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큰 어려움 없이 성공한 삶이야말로 형통한 삶이라고 이해합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 형통하셨다는 말이 우리가 생각하는 무조건적인 성공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창세기 39장에 나오는 요셉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형제 때문에 애굽에 노예로 팔려 가서 갖은 고생을 했습니다. 보디발의 아내 때문에 억울하게 감옥까지 가게 됩니다. 젊은 나이에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살이까지 하게 된 것입니다. 얼마나 기가 막힌 일입니까. 억울하고 고생도 많이 했을 것입니다. 온갖 고난을 겪은 요셉은 마침내 영예로운 애굽 총리의 자리까지 오르게 됩니다. 요셉은 참으로 험난하고 굴곡지고, 평탄하지 않은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은 처량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시기에 형통했다고 합니다. 총리가 된 시점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형통했다고 말하는 때는 요셉이 보디발 주인의 집에서 노예 생활을 할 때, 그리고 간수장 밑에서 감옥생활을 할 때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축복의 순간 이전, 십수 년 동안은 땅을 치고 한탄이 절로 나오는 억울하고 비참하고 어두운 암흑기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 요셉은 모든 일에서 형통의 축복을 누렸다고 얘기합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2절)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께서 주신 형통은 우리가 떠올리는 성공이나 탄탄대로의 삶이 절대 아닙니다. 실패하지 않고 아무런 문제 없이 지내는 삶도 아닙니다. 즉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는 형통한 삶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형통’은 우리가 원하는 상황이나 환경, 지위에 도달하거나 유지하는 삶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시고,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이루어 드리는 삶을 의미합니다.
이렇듯 우리의 시선으로 바라본 요셉의 삶은 쉽지 않고 변화가 많아 보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늘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셨고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다고 말씀합니다.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23절) 참으로 이상합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떠올리는 형통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지 않습니까.
매일 매일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을 누리는 삶, 내 뜻이 아닌 주님의 뜻대로 사는 삶. 이것이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는 범사에 형통한 삶입니다. 형통은 현실의 눈이 아닌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순종의 눈으로 바라볼 때 이해되고 해석됩니다.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 높고 넓고 깊은 뜻, 구원의 큰 계획이 부족한 나를 통해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항상 온전한 믿음으로 세상의 형통이 아닌 하나님의 형통으로 살아야 합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형통하시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채란 목사(대의미션 교회)
◇채란 목사는 이화여자대학교 장식미술과와 미국 뉴욕에 있는 뉴욕주립대학교 산하 패션 전문학교(Fashion Institute of Technology)에서 공부했습니다. 이후 서울 광진구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M.Div.)을 마치고 목사안수를 받았습니다. 현재 대의미션교회 담임목사, (재)대의미션 이사장 등을 맡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사랑을 전하고 있습니다. 대의미션은 2014년 9월 3일 설립해 40여 개국에 120여개 교회를 세웠습니다.
●이 설교는 장애인을 위해 사회적 기업 '샤프에스이' 소속 지적 장애인 4명이 필자의 원고를 쉽게 고쳐 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