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 데이터 한해 90억건 쌓여… 디지털 혁신 마중물 될 것”

입력 2024-05-31 00:34
허창언 보험개발원장이 지난달 23일 서울 여의도 보험개발원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허 원장은 보험개발원이 보험산업의 위기 극복과 미래 성장동력 창출을 위한 ‘전초기지’가 되겠다고 강조했다. 최현규 기자

인구가 줄고 늙어가고 있다. 경제 성장은 정체되는데 기후 위기 등 예상치 못한 변수는 많아졌다. 보험 산업이 맞닥뜨린 현실이다. 지금까지와 같은 방식으로는 산업 자체가 유지될 수 없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이런 때 ‘기회’를 말하는 이가 있다. 허창언 보험개발원장은 지난달 23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시대에 보험업계가 쌓아온 데이터는 새로운 길을 만들어낼 힘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데이터가 금은보화다. 한해 약 90억 건의 데이터가 집적되는 보험개발원이 (이를 활용하는) 선발대이자 마중물이 될 것”이라면서 지능형 사물인터넷(AIoT) 등 신기술과 접목한 건강관리 솔루션 등 청사진을 제시했다.

만난 사람=조민영 온라인뉴스부장

-원장 취임 1년 반, 빅데이터·디지털 대전환을 강조해 왔다. 어떤 의미인가.

“1983년 보험료율 산출기관으로 출발한 보험개발원에는 각 보험사의 보험금 지급 통계가 집적됐다. 그동안은 그런 데이터를 요율 산출에만 쓰고 다시 창고에 넣어 썩혀 왔는데 이제는 그것을 결합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보험 데이터에다 카드, 은행은 물론 통신 등 비금융데이터까지 결합해 멋진 상품을 내놓는다. 우리도 올해 본격적으로 신용평가회사(코리아크레딧뷰로)와 통신사(SKT), 카드사 등의 데이터와 보험개발원 보험정보를 결합해 다양한 상품모델을 개발, 시범적으로 선보이려고 한다.”

-비금융데이터 결합이 가져올 변화는 어떤 것인가.

“예를 들어 화장실을 이용하면 혈당 등 건강상태를 측정해주는 스마트 토일렛(화장실)과 같은 지능형 사물인터넷(AIoT) 데이터를 보험에 결합해 건강관리 솔루션을 제시할 수 있다. 관리를 잘하면 병원 갈 횟수가 줄어들지 않겠나. 초고령사회에서 보험산업은 이런 식으로 전통적인 보험상품 판매자를 넘어 각종 건강 위험을 예방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스마트폰과 가전, 가스 등을 연결한 AIoT는 누전이나 화재, 도둑 등의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 독거노인 등이 늘어나는 시대에 이런 서비스 필요성은 커질 것이다. 보험사 입장에서도 손해율을 낮출 수 있다. 미국이나 캐나다에서는 보험에 가입하면 이런 AIoT를 공짜로 달아주기도 한다. 여러 데이터를 결합한 트렌드 분석으로 새로운 상품 개발이나 마케팅 실효성을 높일 수도 있다. 신규 가입자에 대한 심사 과정(언더라이팅)에도 유용하다.”

-국내 보험사들은 변화에 얼마나 준비가 돼 있나.

“미안하지만 쓴소리를 안 할 수 없다. 한국 보험업계가 세계 7위 규모가 됐다고 하지만 여전히 1~4위와 격차가 크다. 무엇보다 전통적인 보험에 아직도 많이 얽매여 있다. (국내 업계는) 변화에 무딘 듯하다. 보험업계 데이터를 가장 많이 가진 우리부터 (변화를) 시작하려고 한다. 1년에 약 90억건의 데이터가 들어온다. 우리가 (변화의) 선발대이자 마중물, 4차 산업혁명의 전초기지가 되겠다.”

-고령화 시대에 맞춰 역점을 두는 사업은.

“간병보험 수요가 큰데, 그동안 국내 간병위험률 통계가 없어 적극적인 대비가 어려웠다. 건보공단 공공데이터를 활용해 기존 간병보험의 한계점을 개선할 계획이다. 또 노후 생활자금이나 건강자금을 보장하는 유병자 연금보험 등 기존에 없는 연금 상품 모델도 과감하게 개발 지원하려고 한다.”

-MZ 청년 세대는 보험가입에 소극적이지 않은가.

“‘오늘을 신나게 살자’는 젊은 층은 보험에 관심이 없다. 이들에게 ‘보험 맛’을 보여줄 상품이 필요하다. 일본의 경우 사후 정산형 단기 암보험도 나왔다. 암에 걸리면 후불로 보험료를 내는 정반대 보험이다. 어떤 식으로든 ‘보험이 이래서 필요하구나’ 효용을 느껴보게 하는 게 중요하다. MZ세대를 위해 소액 단기보험이 활성화된 해외 주요국 상품 개발 사례와 요율 산출 방안을 조사할 계획이다. MZ세대의 활동 영역·소비 성향 등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데이터와 보험데이터를 결합한 빅데이터 분석도 추진하고 있다.”

-자동차 요율 체계 개편 작업도 진행 중인 것으로 안다.

“기술이 고도화하면서 운전자의 운전습관, 차량 상태 등까지 자동차 안팎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게 됐다. 보험사들과 함께 운전 사고 이력이나 주행거리뿐 아니라 급브레이크, 신호 위반이나 차선 위반 등 운전 습관에 관한 모든 것을 플랫폼으로 집적하려고 한다. 이에 따라 다양한 운전 습관이나 차량의 성능 수준 등을 세분화해 할인 약정에 반영할 수 있을지 검토하려 한다. 운전을 조심하는 효과도 있고, 약정을 세분화한다는 건 대체로는 개개인에게 요율이 공평해진다는 의미도 있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서비스 중계기관으로서 분주할 것 같다. 의료계 반발 등은 해소됐나.

“오는 10월 25일 서비스가 개시된다. 병원 등 요양기관과 보험사 등 이해관계자들의 요구 사항을 최대한 반영해 실손보험의 플랫폼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려 한다. 가장 중요한 건 보험금을 ‘간단하게’ 청구하게 해 국민의 편리성을 높이는 것이다. 관련법이 국회에서도 반대 없이 통과됐다. 반대하는 병원이 있을 수 있겠지만 결국엔 소비자는 청구 간소화가 되는 병원과 안 되는 병원을 구분해 편한 쪽으로 갈 것이다.”

-보험 산업 발전을 위해 당국에 바라는 것은.

“데이터, 4차 산업혁명 등을 위해선 정보보호법 등에 획기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현재 여러 법에 걸쳐 규제가 빡빡한데 그보다는 유사시 책임자 엄벌만 명확히 해두고 자율에 맡기는 게 훨씬 효율적이다.”

정리=신재희 기자 j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