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에서 여야가 막판까지 대치했던 ‘채상병 특검법’이 최종 폐기됐다. 윤석열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에 따라 국회로 돌아온 특검법은 본회의 재표결에서 결국 여당의 저지선을 넘지 못했다. 그러나 192석 거야(巨野)가 22대 국회 개원 즉시 재추진을 예고하고 나서 채상병 특검법을 둘러싼 여야 대치 국면은 다음 회기로 넘어가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여야는 28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윤 대통령이 돌려보낸 채상병 특검법을 재표결했다. 해당 법안이 본회의를 다시 통과하려면 재적 의원 과반 출석에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특검법은 재석 의원 294명 중 찬성 179명, 반대 111명, 무효 4명으로 부결됐다.
무기명 투표인 데다 5명의 의원이 공개적으로 찬성표를 던지겠다고 선언한 국민의힘은 이탈표를 최소화하기 위해 본회의를 앞두고 특검법 부결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민주당과 정의당, 새로운미래, 조국혁신당, 기본소득당, 진보당 등 야 6당은 부결로 끝난 재투표 직후 로텐더홀에서 규탄대회를 열고 22대 국회가 열리자마자 특검법을 ‘1호 법안’으로 재추진하겠다고 밝혔다.
22대의 범야권 의석은 192석으로 21대의 180석보다 많다. 국민의힘에 뿌리를 둔 개혁신당을 포함해 모든 야당이 채상병 특검법에 찬성하고 있다. 윤 대통령이 22대 국회에서 이 법안에 대해 또다시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더 거센 공세에 직면하게 되는 셈이다. 22대에선 의석수상으로 여당에서 최소 8표만 이탈해도 대통령의 거부권이 무력화될 수 있다.
이날 본회의에선 전세사기 피해자를 ‘선(先) 구제 후(後) 회수’ 방식으로 지원하는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 안정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도 여당이 퇴장한 가운데 처리됐다.
야권은 이어 민주화운동 유공자 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의 민주유공자예우법과 가맹점주의 단체교섭권을 부여하는 가맹사업법, 쌀값 폭락 시 정부가 매입토록 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 등 7개 쟁점 법안의 본회의 부의도 단독으로 처리했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이 중 민주유공자법, 농어업회의소법, 지속가능한 한우산업을 위한 지원법, 세월호 참사 피해구제 및 지원 특별법 개정안을 의사일정 변경을 통해 안건으로 상정해 야권 단독으로 처리했다. 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전세사기특별법을 비롯한 5개 법안이 야당 단독으로 통과한 것이다. 이에 여당과 해당 부처 장관들은 “대통령의 재의요구권 행사를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21대 국회 폐원일인 29일 임시국무회의를 열어 이들 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의결할 계획이다. 전세사기특별법과 민주유공자법, 농어업회의소법 등 최소 3개 법안에 대한 선별적 거부권 행사가 있을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연금 개혁안과 각종 민생법안은 여야 합의 실패로 결국 무더기 폐기 수순을 밟게 됐다. 여야가 임기 말까지 ‘정쟁 법안’에만 몰두하다가 국민 삶과 직결되는 법안 처리는 방기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김영선 이경원 기자 ys8584@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