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가 해안선을 빚어내듯 인간도 매 순간의 선택으로 삶의 족적을 남긴다. 이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삶의 방향성이 여실히 드러나기 마련이다. 최근 첫 책 ‘하나님, 그래서 그러셨군요!’(규장·표지)를 펴낸 배우 신애라(55)도 그간의 삶을 되짚다 ‘하나님의 목적’이란 인생의 궤적을 만났다.
생계로 바빴던 부모의 빈 자리로 다소 쓸쓸했던 유년 시절, 안방극장을 휘어잡은 톱스타 시절 배우 차인표와 가정을 꾸린 일, 출산한 아들과 입양으로 만난 두 딸을 키우며 전 세계 빈곤 아동을 후원한 것, 미국에서 기독교 상담학과 가정사역을 공부한 일, ‘금쪽이 아줌마’로 수많은 부모와 자녀의 사연을 만난 것…. 삶의 모든 순간에서 하나님 은혜를 발견한 그가 집필 5년 만에 책을 마무리하며 한 말은 “하나님, 그래서 그려셨군요!”다. 이 책을 “자서전이 아닌 하나님께 드리는 ‘인생 전반기 보고서’로 봐달라”는 그를 지난 27일 서울 강남구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인생 전반기 보고서를 완성한 소감이 궁금합니다.
“‘인생 정리를 해야겠다’고 의도해서 쓴 글은 아니에요. 미국에서 5년 넘게 공부한 걸 써야 하나, 최근 관심을 쏟는 고아 사역을 쓸까 고민하다가 ‘하나님, 일단 아무거나 다 써보겠습니다’하고 쓴 글이거든요. 완성하고 다시 읽어보는데 ‘내가 쓴 게 아니구나, 나를 통해 하나님이 쓰신 거구나’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출판사와 소설을 써본 남편의 도움을 받았지만 글쓰기가 힘들어서 도중에 포기할까 고민도 많았는데 책을 손에 들고 보니 그간의 고생이 다 보상받는 거 같네요.”
-인세 전액을 사단법인 야나(YANA)에 기부하기로 했습니다.
“책을 탈고하면서 ‘이제 이 책은 내 것이 아니다’란 마음이 들었습니다. 책이 하나님의 일을 위한 도구로 쓰일 거란 확신에서 나온 생각이었지요. 그렇기에 인세 역시 제 것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요즘 감사한 건 책을 읽으며 자기 삶의 여정을 돌아봤다는 반응이 주변에 꽤 많다는 거예요. 고아 사역뿐 아니라 독자의 마음을 만지는 수단으로도 책이 쓰이는 거지요. 하나님의 계획이 참 놀랍습니다.”
시설보호 아동과 자립준비청년을 돕는 사단법인 야나의 홍보대사인 신애라는 매달 연예계 동료와 보육원을 방문해 아이들을 만난다. 메이크업 아티스트 이경민 등 가까운 지인 한두 명과 시작한 이 봉사엔 현재 배우 이미도와 가수 송하예, 개그맨 김기리 심진화 등 20여명이 참여 중이다. 이 봉사의 특징은 봉사자와 보육원 아동이 ‘일대일 매칭’돼 단 한 명에게만 온전한 관심을 쏟는다는 것이다. 단체 생활로 부모의 사랑을 오롯이 받은 경험이 전무한 아이들의 상황을 고려했다.
그는 “단 몇 시간 만이라도 일대일의 온전한 시선을 아이에게 제공하는 게 이 봉사의 가장 큰 목적”이라고 말했다. 책에는 부부와 세 자녀가 보육원 아이들과 공원과 공연장 등을 다녀온 뒤 이들을 집으로 초대해 식사하는 ‘가정 체험’ 사례가 여럿 등장한다.
-일대일 가정 체험을 강조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사람은 누구나 일대일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제대로 된 성인으로 자라기 힘들거든요. 가정의 따스함을 느낄 기회를 전혀 주지 않고 화목한 가정을 꾸려보라는 건 정말 불합리한 요구입니다. 어릴 때 가정을 자주 보고 경험하는 게 중요한 이유지요.
보육원 아동이 한 달에 한 번꼴로 가정 체험을 한다면 퇴소 땐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보일 겁니다. 최근 자립준비청년에 대한 관심이 높은데 퇴소 전부터 이들의 삶에 관심을 갖고 돌봐주는 게 더 필요하다고 봅니다.”
중학교 2학년 때 친구 초대로 교회에 처음 출석한 신애라는 2005년 8월 릭 워런 목사의 베스트셀러 ‘목적이 이끄는 삶’을 접하고 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자신의 달란트가 연기가 아닌 ‘일대일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라는 아이들에 대한 공감과 애끓는 마음’임을 확인한 그는 두 달 뒤 국제어린이양육기구 한국컴패션 홍보대사로 나서 에티오피아 인도네시아 등의 빈곤 아동 50명의 엄마가 됐다. 같은 해 12월엔 첫 딸 예은이를, 2008년엔 둘째 딸 예진이를 가족으로 들이며 입양의 중요성에도 눈떴다.
입양의 차선책인 위탁의 필요성은 미국 유학 시절에 배웠다. 25년 넘게 했던 연예계 생활을 잠시 접고 기독교 상담을 공부하던 그는 밤늦게 귀가하는 엄마를 기다리던 ‘어린 애라’의 울음이 보육원 아동의 울분과 닮았다는 걸 발견한다. 이 시절을 그가 “깨지고 모난 내면을 회복했던 시간”이라고 회고하는 이유다. 2019년 귀국 후 보육원 아동을 도울 방법을 찾던 그는 사역의 지향점이 같은 야나에 2021년 합류했다.
홍보대사지만 사업 아이디어도 제공하는 등 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봉사자를 교육하는 ‘야나 아카데미’도 그가 제안했다. 현재 출석 중인 서울 순전한교회와 경기도 성남 만나교회 등 교회 4곳이 야나 아카데미를 열고 보육원 사역을 진행 중이다. 그는 “국내 보육원 250여곳과 전국의 교회가 연결된다면 얼마나 많은 아동이 일대일 관심을 누릴 수 있겠는가”라며 “꼭 야나가 아니더라도 더 많은 교회가 보육원 사역에 동참했으면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미국·캐나다 한인교회와도 연계해 ‘일대일 가정 체험’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야나에서 지난해 여름부터 해외 가정체험 프로그램 ‘오늘부터 가족’을 시작했습니다. 7~10일간 해외뿐 아니라 가족과 여름성경캠프도 체험하는 기회인데 지난해 후기를 보니 참석한 아이들의 만족도가 참 높더라고요. 더 많은 한인교회가 동참해 아이들이 가정도 경험하고 조건 없이 나를 사랑하는 진짜 아버지인 하나님을 알게 되는 기회가 늘길 바랍니다.”
-5년 차 ‘금쪽이 아줌마’입니다.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기대하고 기다리고 기도하라’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일명 ‘3기’인데요. 자녀는 하나님이 특별한 계획과 목적을 갖고 부모에게 맡겨준 귀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부모의 기대 대신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이뤄지는 걸 기대하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특히 사춘기 때 속상할 때가 참 많잖아요. 그 순간조차도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임을 잊지 말고 기다려줘야 합니다.
또 100% 좋은 부모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완벽하지 않은 부모에게 귀한 자녀를 맡긴 이유는 뭘까요. 어디 한번 잘 키워보라는 게 아니라 ‘이 아이를 위해 울며 기도할 사람은 너뿐이니 기도하며 잘 키우라’는 게 아닐까요.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에 나오는 부모도 다들 자녀를 위해 모든 걸 희생하고 눈물 흘리는 분들입니다. 자녀를 사랑하지만 방법을 몰라 애타는 경우지요. 이런 부모가 없는 우리 아이들은 힘들고 외로울 때 누구에게 기댈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들곤 합니다.”
-지금까지의 삶을 “하나님의 목적을 위한 전초전”이라고 했는데, 향후 계획이 있다면요.
“이제 55세니까 100세까지 산다고 하면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날이 더 적겠죠? 제가 좋아하는 성경구절이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인데요.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이 말씀이 지금 제가 할 일이자 주님이 명령한 일이라 믿습니다. 주님과 동행하면서 말 못 하는 어린아이의 소리를 대신 내는 일에 앞으로도 힘써보고 싶습니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