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22대 국회에서 개헌에 성공하려면

입력 2024-05-28 00:31 수정 2024-05-28 09:27

개헌은 제22대 국회에 대한 최우선 주문사항 중 하나다. 오랫동안 개헌의 실패가 반복되면서 얻은 지혜는 개헌은 여야, 국민 모두가 합의하는 최소한의, 단계적, 순차적 방식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정치에서 개헌이 되려면 충족해야 할 세 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는 정치권과 국민의 강한 욕구가 있어야 한다. 둘째는 구체적으로 합의가 가능한 개헌안이 있어야 한다. 셋째는 현재의 권력 즉, 대통령이 전혀 개입하지 않고 무조건적 수용이 있어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4년 연임제 원포인트 개헌은 국민이 공감하는 매우 구체적인 개헌안이었지만 현직 대통령의 적극적 개입으로 좌절됐다. 문재인 전 대통령 때의 개헌안은 지방분권 강화, 토지공개념, 영장청구권 삭제 등 너무 많은 것을 담아 반대세력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에 반해 헌정사상 최초의 여야 합의에 의한 개헌의 결과인 현행 헌법의 개정은 세 가지 조건을 모두 갖췄다. 첫째, 정치권과 국민의 강한 헌법 개정 욕구와 에너지가 있었다. 둘째, 6·10 민주항쟁의 구호였던 ‘직선제’라는 구체적 단일안이 있었다. 그리고 6·29선언으로 상징되는 현직 대통령의 무조건적 수용이 개헌을 성공리에 마무리짓게 한 것이었다.

22대 총선에서 드러난 민의에는 집권여당에 대한 심판뿐 아니라 정치를 바꿔 달라는 메시지가 분명히 담겨 있다. 이는 개헌의 성공조건 중 국민적 욕구와 에너지로 해석이 가능하기에 국회를 중심으로 정치권의 협의와 국민적 합의를 구체화시키는 문제가 남아 있을 뿐이다. 지금까지 대통령 5년 단임제에 대한 대안으로서 4년 중임제와 최근의 5·18 헌법전문 수록이 정치권과 국민의 대체적인 합의다.

현행 헌법의 권력구조 중 최대 문제는 국민에게 대통령의 선출권만 있지 심판권이 없는 단임제라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식의 4년 중임제로 개헌해 현직 대통령이 재심판을 받는 민주적인 시스템을 갖추자는 것이다. 대통령의 무책임한 독선이 5년마다 주기적으로 악순환되는 것이 단임제의 최대 맹점이다. 더 나아가 지방자치와 지방분권의 수준이 미약해 대통령은 중앙과 지방 통틀어서 어느 누구도 견제하기 힘든 존재가 됐다.

4년 중임제를 채택하고 있는 미국 헌법에서는 단임대통령제운동이 여러 번 시도됐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특히 6년 단임 대통령제가 ‘4년 중임제가 다음 선거 준비 때문에 소신 있는 국정운영을 어렵게 한다’는 이유로 검토 대상이 돼 왔다. 이 안은 1826년부터 150회 이상 의회에 제출됐으나 ‘단임제는 대통령이 선출될 때부터 권력누수 현상을 초래할 수 있고 국민에 대한 책임성과 대응성을 기대하기 어려우며, 분할정부가 탄생하면 그 기간을 더 연장시켜 버린다’는 이유로 계속 채택되지 않았다. 4년 중임제 문제가 아무리 많아도 단임제의 폐해와는 비교도 안 된다는 미국적 경험과 판단은 한국 헌법사에 타산지석이다.

개헌 대상은 대통령 4년 중임제와 5·18 헌법전문 수록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오히려 정치적 쟁점을 우회해 저출생 문제와 사회권 강화 및 신(新)기본권 등의 문제에 집중할 수 있다. 특히 4·5공화국의 자구를 그대로 답습한 채 지방자치에 대한 헌법적 규정이 권력의 지방 이양 및 분산·분권의 내용을 담지 못하고 있는 것도 과제이다.

요컨대 개헌의 주체로서 22대 국회는 개헌특위를 설치해 국회 안팎에서 적극적이고 다양한 공론화 과정을 개원 초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경우에 따라 ‘개헌절차법’을 제정해 공론화 과정을 규범화하는 등 개헌 논의를 견고히 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현직 대통령과는 개헌이 근본적이고 구체적이며 현실적인 최고의 국정 마무리라는 인식을 함께 공유하면 더 좋을 것이다.

박상철 국회입법조사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