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복음세계선교대회(이하 선교대회)는 지구촌 곳곳에 파송된 '순복음 선교사'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자리다. 1974년 시작된 이 행사가 열리지 못한 해는 IMF 외환위기가 닥쳤던 1998년이 유일하다. 선교사들은 매년 5월 선교대회를 통해 선교의 사명을 되새기고 영적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다. 국민일보는 최근 이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고국을 찾은 선교사 2명을 차례로 인터뷰했다. 지구 반대편 브라질에서 사역하고 있는 김용환(65) 선교사와 척박한 아프리카 대륙 케냐에서 복음의 씨앗을 뿌리고 있는 이한용(48) 선교사가 그 주인공들이다.
낮 1시쯤 되면 주일 예배가 한창인데도 성도들이 하나둘씩 예배당을 빠져나갔다. 사연을 알아보니 우유 때문이었다. 성도 중 가난한 이들은 동네 부자들이 키우는 젖소를 관리하는 일을 했다. 일요일 낮이면 동네엔 우유 공장 직원들이 우유를 받으러 왔고, 성도들은 그들을 만나러 나가야 했다.
이 선교사는 생계 탓에 예배도 제대로 드릴 수 없는 성도들의 상황이 안타까웠다. 젖소를 선물하면 어떨까 고민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결국 그는 가난한 성도 3명을 골라 젖소를 분양하기로 결정했다.
“젖소 분양을 결정하고 나니 놀라운 일이 벌어졌어요. 이 상황을 전해 들은 한국의 어떤 집사님으로부터 젖소 7마리를 더 살 수 있게 도와주겠다는 연락이 왔어요. 때마침 케냐를 방문한 한국의 장로님들이 계셨는데, 이분들도 ‘젖소 사역’을 아시고 10마리를 더 살 수 있도록 후원해 주셨어요. 그렇게 20마리의 젖소를 사서 2018년 5월쯤 가난한 가정들에 젖소를 분양했습니다. 케냐에서 젖소 한 마리의 가치는 아파트 한 채랑 비슷해요.”
이렇게 시작된 젖소 분양은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 젖소 덕분에 소득이 증가한 성도가 늘고 헌금액이 많아지면서 교회 재정도 탄탄해졌다. 지금까지 젖소를 분양받은 곳은 68가정. 이들은 교회 덕분에 희망을 품게 됐다.
이 선교사는 26일 국민일보 스튜디오에서 인터뷰를 갖고 젖소 분양 스토리 외에도 케냐에서 사역하면서 겪은 갖가지 에피소드와 올해로 14년째 이어지고 있는 케냐 선교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우선 그가 선교사의 길을 걷게 된 과정은 이랬다. 2002년 군 제대를 한 뒤 생각했다. 하나님께 ‘시간의 십일조’를 하고 싶다고. 결국 그는 1년간 케냐로 단기 선교를 떠났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하나님께서 허락한다면 케냐에 다시 가겠노라고 기도했다.
“고 조용기 목사님이 말한 오중 복음 삼중 축복의 메시지를, 이영훈 목사님의 절대 긍정 절대 감사의 의미를 케냐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어요. 가난 탓에 절망하고 있는 그들에게 희망의 복음을 선물하고 싶었죠.”
한국에 돌아와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전도사로 사역하다가 케냐로 파송된 것은 2011년 9월 4일이었다. 사역지는 케냐의 슬럼가라고 할 수 있는 사이카 지역. 이곳에서 그는 사이카순복음교회를 섬기면서 케냐영산미션센터 센터장이자 케냐영산신학교 학장으로 현지인 목회자 양성에 주력했다.
“케냐 복음화율이 60%라는 집계도 있지만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는 이는 20%도 안 된다고 할 수 있어요. 특히 목회자 중엔 정식 신학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이 많아요. 이단으로 빠지는 경우가 생길 수밖에 없죠. 그래서 제가 가장 역점을 두는 분야는 현지인 목회자를 배출하는 일이에요.”
그의 노력은 케냐에서 이미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 케냐영산신학교에서 배출한 현지인 목회자를 통해 세워진 교회는 22곳에 달한다. 이들 교회 가운데 자립에 성공한 곳은 6곳이나 된다. 이 선교사는 “나머지 교회들도 영세하지만 건강한 교회로 성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매년 5월이면 그는 선교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는다. 이 선교사는 “선교대회 기간에 열리는 수련회를 통해 은혜를 받고, 다른 선교사들 이야기를 통해 도전을 받고, 우리를 응원하는 성도들을 보며 선교사의 삶도 되새기곤 한다”며 “이 행사를 통해 받은 은혜를 사역지에 돌려주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케냐에서 사역한 지 10년이 넘었는데 돌아보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간 것 같아요. 언제까지 케냐에 머물 거라는 식의 계획은 없어요. 변함없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선교사로, 초심을 잃어버리지 않는 선교사로 살아야겠다는 생각만 할 뿐이에요.”
글·사진=박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