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오는 7월 4일(현지시간) 조기 총선이 실시된다. 집권 보수당 지지율이 제1야당인 노동당에 크게 뒤지고 있음에도 리시 수낵(44) 총리는 승부수를 던졌다.
노동당은 현 지지율을 총선까지 적당히 유지하면 14년 만에 정권을 탈환할 수 있다. 노동당이 승리할 경우 차기 총리로 거론되는 키어 스타머(62) 노동당 대표는 예상보다 앞당겨진 총선일을 “이 나라가 기다려온 순간”이라며 환영했다.
수낵 총리는 22일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관저 앞에서 대국민 연설을 통해 “영국이 미래를 선택할 순간”이라며 “7월 4일 총선을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수낵 총리는 찰스 3세 국왕을 만나 차기 총선을 위해 오는 30일 의회 해산을 요청했고, 동의를 얻었다고 설명했다.
영국 선거법상 차기 총선은 내년 1월 28일 전에 치러야 한다. 노동당은 지난 2일 지방선거에서 압승한 뒤 조기 총선을 강경하게 요구해 왔다. 당초 10~11월이 유력해 보였던 총선 시기는 수낵 총리의 깜짝 발표로 3개월 이상 앞당겨졌다.
영국 언론들은 수낵 총리의 결정을 ‘정치적 도박’으로 평가했다. 수낵 총리가 이날 관저 앞에서 비를 맞으며 한 연설은 예정되지 않았던 것으로 내각 관료들도 몰랐다고 한다. 보수당은 혼란에 빠졌다. 일간 가디언은 “일부 분노한 보수당 의원들이 의회 해산 전에 조기 총선 계획을 취소하고 수낵 총리를 끌어내려 대체자를 세우기 위해 공모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보수당 의원들이 당혹스러워하는 건 현재 당 지지율이 노동당의 반토막 수준이기 때문이다. 지난 19일 레드필드·윌턴 여론조사에서 노동당 지지율은 45%, 보수당은 23%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수낵 총리가 조기 총선을 결심한 것은 경기 회복 조짐에서 여론을 반전시킬 기회를 잡았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영국 통계청이 이날 발표한 4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21년 7월(2.0%) 이후 가장 낮은 연 2.3%로 집계됐다. 인플레이션 둔화에 따라 현행 5.25%인 기준금리가 올여름 인하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중앙은행인 잉글랜드은행은 다음 달 20일 기준금리를 결정하는데, 총선을 정확히 2주 앞둔 시점이다.
수낵 총리는 “내가 이끄는 보수당 정부만이 힘겹게 얻어낸 경제적 안정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을 수 있다”며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보호를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스타머 대표는 권력을 얻기 위해 쉬운 길만을 택해 왔다”고 비난했다.
스타머 대표는 “우리는 영국을 재건할 수 있다”며 정권교체 의지를 드러냈다. 그는 상하수도 오염과 범죄율 증가, 생활물가 상승 등을 열거하며 “이 모든 게 보수당이 일으킨 혼란의 결과”라고 지적했다. 검사 출신인 스타머는 강경 좌파 전임자인 제러미 코빈과는 거리를 두면서 당을 좀 더 중도 쪽으로 옮긴 것으로 평가받는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