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원 사망 사건의 수사 외압 의혹을 규명하자며 더불어민주당이 통과시킨 ‘채 상병 특검법’에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다.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첫 특검법이란 태생 과정이 말해주듯, 이 법안은 거야의 독주가 빚어낸 결과물이다. 윤 대통령이 취임 후 여섯 번째 거부권 행사를 통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정국은 다시 거친 대결 국면에 접어들었다. 이달 말로 예상되는 국회 재의결을 앞두고 야권은 장외투쟁에, 여권은 표 단속에 나선 터라 21대 국회는 마지막까지 입법 폭주와 거부권의 정면충돌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됐다. 정치의 복원을 바라던 민심은 여야에 거듭 외면당했다.
채 상병 특검법 사태는 재난을 정쟁화한 대표적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발단은 재난 구조 활동 중 벌어진 장병의 안타까운 죽음이었다. 그 원인과 책임을 규명하는 과정에서 해병대 수사단의 조사 결과가 국방부 장관의 결재를 받았다가 보류되고, 반발한 수사단장이 항명 혐의로 기소됐다. 수사권이 없는 해병대가 조사 대상자의 혐의와 사법적 판단까지 특정한 게 잘못이란 지적, 대통령실의 외압에 처벌 대상을 축소하려 했다는 의혹이 서로 충돌했다. 이에 정권과 대립하던 야당이 외압 의혹을 밝히자며 특검을 꺼내들어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채 상병 죽음의 원인을 ‘규명하던 과정을 규명하는’ 특검법에 이렇게 온통 매달려 있는 동안, 애당초 규명하고자 했던 그 안타까운 죽음의 원인과 책임을 밝히는 본래의 수사는 관심 밖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지금 경북경찰청에서 지지부진한 수사가 계속되고 있는데, 정치권의 누구도 그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정작 중요한 본류는 제쳐둔 채 거기서 파생된 곁가지만 붙들고 소모적인 싸움에 매달리고 있는 형국이다. 시작은 젊은 군인을 죽음에 이르게 한 잘못을 가려내 다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는 거였다. 왜곡된 정치가 끼어들면서 재난의 수습과 재발 방지에 우리는 또 실패하고 있다.
사건의 본질로 서둘러 돌아가기 위해서라도 특검법 정쟁을 계속 이어가선 안 될 것이다. 야당이 만든 특검법은 특별검사를 사실상 야당이 정하는 등의 비상식적인 요소가 많다. 이런 법이 나오도록 의혹의 빌미를 제공하고 오히려 키운 여권의 책임도 작지 않다. 공은 다시 국회로 갔다. 정쟁을 넘어 말 그대로 ‘규명’을 위한 타협의 여지는 아직 남아 있다. 여야가 다시 머리를 맞대야 한다. 채 상병의 순직을 정쟁거리로 소모되게 놔둘 순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