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20일 해외 직접구매(직구) 제한 철회와 관련해 정부에 “민생정책 입안 과정에서 당과 사전 협의를 해 달라”고 촉구한 것은 22대 국회 개원 이후 당이 정책 주도권을 쥐고 가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만 5세 입학’ 등 정책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여당은 침묵하거나 정부를 엄호했는데, 이런 모습에서 벗어나 정부에 ‘할 말은 하는’ 여당이 되겠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추 원내대표는 이날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최근 해외 직구 규제 논란을 두고 정책의 내용과 파장, 여론 영향 등을 조목조목 언급하면서 정부를 질타했다. 국민의힘의 한 중진 의원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평소 굉장히 조심스럽고 신중한 성품인 추 원내대표가 상당히 작심하고 한 발언 같다”고 평가했다.
여당 의원들 사이에는 그동안 문제점으로 지적돼온 ‘수직적 당정 관계’를 개선해야 할 때라는 의견이 분출하는 상황이다. 수도권의 한 초선 당선인은 “그동안 당정일체를 주로 강조해 왔지만 엄연히 말해 당과 정부는 별개의 조직”이라며 “잘못된 정책에 대해 여당에서 당연히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영남의 한 초선 당선인도 “그동안 국민의힘이 대통령실 눈치를 많이 보는 이미지로 비쳤던 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6일 수도권과 대구·경북(TK) 지역에 이어 이날 부산·경남(PK) 지역 국민의힘 초선 당선인들을 한남동 관저에 불러 만찬을 함께했다. 초청을 받은 한 당선인은 “대통령도 기존의 수직적 관계를 벗어나 여당과 소통을 강화하려는 의지를 보인 것 같다”고 말했다.
여당 내 기류 변화는 총선 참패 이후 각종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20~30%대에서 제자리걸음을 하는 등 전기가 마련되지 않으면 당정이 공멸할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으로 풀이된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총선 전에는 공천 때문에 대부분 의원이 대통령실 눈치를 봤지만 다음 총선 공천권은 현재의 대통령실에 없다”며 “정부의 잘못에 대해 할 말은 하는 의원이 많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한 재선 의원은 “정부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만으로는 민심의 기대치를 충분히 반영했다고 보기 어렵다. 김건희 여사 문제나 특검 등에서도 당 지도부가 국민 눈높이에 맞는 메시지를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정 관계의 실질적 변화는 정부 정책 문제에서 더 나아가 민감한 정치적 사안에 대해 여당이 제 목소리를 낼 때 체감될 수 있다는 얘기다.
당내에서는 비주류를 중심으로 김 여사를 향한 쓴소리도 이어졌다. 김재섭 서울 도봉갑 당선인은 SBS라디오에 나와 최근 김 여사의 공개활동 재개에 대해 “‘오얏나무 아래 갓끈 고쳐 매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김 여사에 대한) 오해를 연장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조해진 의원도 BBS라디오에서 “(김 여사가) 여론의 눈치를 보다가 잠시 정면에 나왔다가 뒤로 빠지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우리 내부에서 사실관계를 제대로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종선 박성영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