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나던 날부터 정부는 시종일관 대화를 제의했다. 석 달이 된 20일에도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형식과 의제에 제한 없이 언제든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의사들 사이에서도 대화를 말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전공의 대표는 대통령과 직접 만나기도 했고, 대화를 중재하려는 의대 교수들의 노력도 계속됐다. ‘증원 백지화’의 무리한 요구가 가장 큰 걸림돌이긴 했지만, 정부와 의사들이 ‘더 나은 의료’라는 공통된 목표를 표방한 상황에서 넘어서지 못할 산은 아니었다.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온 데는 대화보다 대치를 택한 이들의 이해관계가 있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지난주 법원 판결로 의대 증원이 기정사실화한 지금, 국면을 전환할 여건이 마침내 마련됐다. 양측 모두 줄기차게 외쳐온 의료개혁의 실질적 성과를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할 때가 왔다.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장이 판결 이후 쏟아낸 비상식적인 발언은 이런 대화 모멘텀을 허물려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는 의대 증원의 정당성을 인정한 재판부를 향해 “대법관 자리로 회유당했을 것”이란 근거 없는 주장을 공공연히 펴고 있다. 이날도 라디오에서 ‘대법관직 회유’를 거듭 운운하며 “아니라는 증거를 (판사가) 대라”는 식의 어이없는 발언을 이어갔다. 내 입맛에 맞지 않으면 사법부 판단까지 배척하는 저급한 인식이 깔려 있다. 오죽하면 법원이 “모욕적”이란 입장문을 냈겠나. 그의 막말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의대 증원을 추진하고 찬성하는 여야 인사들을 “십상시”라 폄하하고, 국민의 지지 여론을 “괴벨스식 선동의 결과”라며 깎아내렸다. 심지어 증원에 긍정적 입장을 밝힌 동료 의사를 고발하기까지 했다. 이런 행태를 보이는 조직이 과연 전체 의사를 대변하고 더 나은 의료를 위한 대화의 파트너가 될 수 있을지, 매우 회의적이다.
말로는 대화를 하자면서 ‘대통령과 의협 회장의 일대일 생방송 토론’ 같은 황당한 주장을 펴는 이들에게 한시가 급한 의료 정상화를 언제까지 맡겨둬야 하는가. 대화의 돌파구를 찾으려면 의협의 한계를 넘어서는 창구가 서둘러 마련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