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11일 밤 11시27분에 나는 ‘친절한 사람이 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라고 메모장에 적었다. 저런 단상을 왜 굳이 문장으로 남겼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경위를 까맣게 잊은 지금도 저 말에 동의한다.
세 살 때인가 네 살 때인가 혼잡한 시장에서 엄마를 잃은 적이 있다. 나보다 서너 배는 큰 어른들 사이에서, 거인 같은 행인이 복잡하게 뒤엉키며 오가는 그 시장통에서 나는 엄마를 부르며 엉엉 울었다. 그때 어디선가 다가와 내 손을 잡고 엄마에게 데려가 준 사람은 행색이 눈에 띄게 지저분한 남자였다. 눈물로 흠뻑 젖은 눈에도 그 남다른 모습은 분명하게 보였다. 한동안 씻지 않은 듯한 얼굴에 수염이 가득했고 한 손에는 깡통을 들고 있었다. 지금으로 말하면 노숙자였을 것이다. 그가 내 손을 잡았을 때 나는 두려움이 아니라 안도감 가까운 것을 느꼈다. 아이에게 엄마를 잃는 것보다 큰 공포는 없다.
엄마는 불과 몇 걸음 앞에 있었다. 그 거리가 어린 내게는 지구 반대편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지구 반 바퀴를 동행해준 남자에게 고맙다는 인사는커녕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엄마에게 건너갔다. 누군가가 나를 도와준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그때는 몰랐다. 성인이 되어서도 제대로 모르고 산 것 같다. 호의를 경험하는 일은 호의를 베푸는 일보다 어렵다. 호의를 내보이는 것은 내가 마음먹으면 되는 일이지만 타인의 호의를 받는 일은 내가 어쩐다고 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착하게 살면 더 많은 호의를 경험할까. 그래야 마땅하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선량한 사람이 깔보이고, 호의가 베푼 사람에게 독이 되는 경우를 자주 본다. 그래서 우리는 친절한 사람이 되는 데 조심스러워지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기적이라서라기보다 ‘호의를 베풀어봤자’라는 생각이 앞을 가로막아서 말이다.
친절이 낯설어서, 기대하지 않은 호의를 마주하면 몸 둘 바를 모르게 된다. 몇 년 전 호주에 여행을 갔다가 시작부터 먹통이 돼버린 휴대폰 때문에 애를 먹었다. 도심 외곽 빈집을 숙소로 잡아뒀는데 정확한 위치는 호스트 쪽에 전화를 해야 알 수 있었다. 집주인은 해외로 휴가를 가면서 그 역할을 친구에게 맡긴 상태였다. 현지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한밤중이었고 비가 내렸다. 무작정 걷다가 발견한 공중전화와 몇 개 안 되는 동전으로 어렵게 연락이 닿았다. 금세 뚜뚜 거리는 수화기 너머로 상대는 내 위치를 묻고는 먼 거리를 직접 마중 나왔다.
그는 픽업이라는 유일한 임무를 끝내고도 바로 돌아가지 않고 폰이 터지지 않는 문제를 해결해주려고 끙끙댔다. 그 뒤로도 내가 머무는 동안 틈틈이 문자메시지로 안부를 물었다. 하루는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 데려가 자신의 여자친구와 함께 저녁 식사까지 대접했다. 거기서 나올 땐 바텐더에게 “한국에서 온 내 친구인데 뭐 선물로 줄 게 없느냐”고 넉살 좋게 말하고는 맥주잔을 받아 내게 건넸다. 마지막 날에는 공항까지 차로 데려다줬다.
처음에는 집주인도 아닌 사람이 왜 이렇게까지 챙겨주나 부담스럽고 의심스럽기도 했다. 도움을 요청한 게 아니었고, 내가 그런 친절을 받을 만한 무엇을 해준 것도 아니었다. 너무 친절하면 수상하게 여기는 것은 자기 보호를 위한 인지상정일지 모르지만 호의를 대하는 태도가 이렇다는 점은 아무래도 미안하고 씁쓸한 일이다.
친절에 인색하게 되는 사회, 호의 뒤에 목적을 감추는 게 다반사인 세상에서 생각지도 못한 선의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은 대단한 경험이다. 그 낯선 친절들 덕에 간신히 살아간다는 생각이 든다.
강창욱 산업2부 차장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