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노트] 젊은이들에게 과거는 ‘낯선 나라’다

입력 2024-05-17 00:34

기성세대에겐 현재가 낯선
곳이 아닐까… 서로가 낯선
세상 살아감을 인정할 필요

최근 방영된 3부작 다큐멘터리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를 보면서 깊은 정서적 유대감을 느꼈다. 지난 3월 15일, 33년 만에 문을 닫은 소극장 ‘학전’의 시작과 끝을 줄기 삼아, 시대정신을 노래하는 천재적 싱어송라이터로 주목받았고 노래극을 매개로 공연예술의 실험정신을 지켜내면서 어두운 무대 ‘뒷것’을 자처했던 연출가 김민기의 삶을 돌아보는 작품이었다.

공연연출가로서 살아온 김민기였지만 대중적으로는 민중가요 ‘아침이슬’의 창작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1971년에 스무 살 청년 김민기가 발표한 ‘아침이슬’에는 청춘의 진지한 고뇌와 순수한 결의가 담겨 있다. 때마침 민주화운동의 주역으로 부상한 대학생 사이에서 큰 반향이 일어나 이 노래는 각종 시위 현장에서 자주 불리게 되었다. 박정희 정권에 의해 금지곡으로 지정되었지만, 구전으로 널리 애창되면서 한국 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노래가 되었다. 지금도 다중이 모인 시위 현장에서는 ‘아침이슬’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한 곡의 서정적인 노래가 시대의 모순과 만나서 창작자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한 시대의 정치 문화적 상징이 되는 과정이 이보다 더 극적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약간 들뜬 마음으로 현대사 강의에서 이 주제를 꺼냈을 때 나는 당황스럽게도 학생들의 무표정한 눈빛과 낯선 반응에 부딪혔다. 그들은 김민기도, ‘아침이슬’도 알지 못했다. 내가 발견한 것은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극명한 문화적 간극이었다. 그것은 급격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문화적 공통분모를 잃어버린 세대 사이의 격차와 단절이 점점 커지고 있음을 일깨워주었다.

이럴 때는 서둘러 태세를 전환해 영국 소설가 L P 하틀리의 “과거는 다른 나라이고, 그곳에서 그들은 다르게 행동한다”라는 말을 인용하는 것이 좋다. 과거는 현재와는 매우 다른 관습, 행동,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 살아가는 외국과 같다. 현재의 렌즈로 보면 과거의 고유한 특징이나 사회적 규범이 낯설거나 이상하게 보일 수 있다.

그러니 과거를 이해하고 해석하려면 외국을 여행하듯이 당시의 낯선 역사적 맥락을 인식하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설명을 친절하게 덧붙인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세대 간 문화적 단절의 실상과 의미를 포착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서로 다른 세대가 서로의 경험과 가치를 완벽하게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을 인정하기는 어렵지 않다. 하지만 기성세대는 젊은 세대에게 느끼는 깊은 단절감과 씨름하면서도 자신을 더 많은 경험과 지혜의 소유자라고 믿는다. 그들은 선의에 가득 차서 자신이 축적한 지식과 깨달음을 젊은 세대에게 전수하고자 한다. 젊은이들이 과거를 이해해야 하는 것은 당연시하는 반면, 예전과는 전혀 다른 세상에서 독특한 사회적 영향 속에 살아가는 그들의 관점과 가치관을 이해하고 인정하려는 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그런 선의의 접근은 자주 젊은 세대에게 저항감과 좌절감을 불러일으킨다.

사회의 변화 속도가 너무 빠르고 삶의 양식이 질적으로 변하는 가운데 기성세대 역시 소외감에 빠지기 쉽다. 그들은 현대의 복잡성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젊은 세대의 무관심에 상처받기도 한다. 자기 관점의 한계와 자신에게 내재한 편견을 의식하기에 ‘꼰대’라는 비웃음을 피하고자 애쓴다. 그들에게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가 ‘낯선 나라’이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과거의 그들 자신과는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한다.

기성세대는 자신의 가치관과 시각을 재조정해야 한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나아가 여러 세대가 각각 ‘낯선 나라’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점을 이해하고, 열린 마음과 호기심으로 낯선 세상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낯선 곳을 여행할 때 가장 현명한 사람은 모든 사람에게서 배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허영란 (울산대 교수·역사문화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