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는 모교(母校)를 말할 때 ‘알마 마테르(alma mater)’라고 한다. ‘영양분을 공급하는 어머니’란 뜻을 가진 이 라틴어 문구는 서양에 최초로 세워진 이탈리아의 한 대학 이름에서 비롯됐다. ‘알마 마테르 스투디오룸’. 오늘날 볼로냐 대학교로 불리는 곳이다.
1088년 개교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대학의 특징은 군주나 교수가 아닌 학생들이 세운 대학이라는 점이다. 학생이 자발적으로 학생회를 구성해 학습목표 설정과 그에 따른 학사를 직접 관리했다. 학생회 초청을 받은 교수는 종종 학생에게 집을 개방하며 가족처럼 가까운 사제 관계를 구축했다고 한다.
볼로냐의 학생에게 대학이 ‘어머니’로 인식된 것이 좋은 선례가 돼 훗날 세워진 대학이 교명을 ‘알마 마테르’로 시작하는 사례가 생겼다. 영미권에서는 알마 마테르를 모교의 뜻으로 사용하기에 이르는데 사료상으로는 1600년 채택된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출판사의 문장(紋章)이 최초다. 그 후 대학가에는 알마 마테르라 이름한 모교상(母校像)이 등장하게 된다. 미국에서는 이달 15일로 예정된 학위수여식을 취소한 컬럼비아대의 모교상이 잘 알려지기도 했다. 이 모교상을 마주한 교정에 텐트를 설치한 친팔레스타인 학생 시위가 지난 한 달간 벌어졌다. 학교 당국은 경찰력을 동원해 이를 철거했지만 아무래도 졸업식을 진행하기엔 우려가 컸다.
학위복 차림에 월계관을 쓰고 자리에 앉은 컬럼비아대의 ‘어머니’상은 그 무릎에 책을 펼치고 오른손에 홀을 든 채 왼손을 추켜들고 자녀들, 즉 학생을 맞이한다. 한국의 경희대 중앙도서관 앞에 복제본이 설치되기도 한 이 청동상의 치마폭에는 찾기 어려운 부엉이상이 있다. 이를 발견할 때쯤이면 졸업할 때가 된다는 우화도 전해진다. 고전적 전통에서 지혜를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매년 5월이 되면 이 ‘어머니’를 마주 보고 정렬해 앉은 졸업생의 학위수여식이 치러지는데 이 어머니를 올해 컬럼비아대 학생들은 졸업식에서 마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왜 어머니일까. 서양의 대학이 어머니로 불린 것은 교회가 어머니로 불린 것과 같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사도 바울이 “위에 있는 예루살렘”을 어머니에 비유했듯(갈 4:26) 테르툴리아누스와 키프리아누스 등 초대 교부는 교회를 성도의 어머니로 보았다. 이런 이해는 칼뱅에게도 이어져 하나님이 그의 자녀들이 “어머니와 같은 교회의 보호와 지도를 받아 어른이 되고 드디어 믿음의 목적지에 도달하게” 한다고 봤다. 즉 교회는 어머니가 돼 그 자녀, 즉 성도를 아버지 하나님께로 지도해 이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대학 또한 어머니가 되어 자녀, 즉 학생을 지도한다. 이 역시 아버지 하나님께로 이들을 이끌어 감을 서양 최초의 대학들은 의도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컬럼비아대에는 모교상 이외에 또 하나의 의미 있는 상징이 있는데 그 안에 이를 뒷받침할 근거를 발견한다. 바로 이 대학 문장이다. 초대 총장 새뮤얼 존슨 목사가 고안한 이 문장에는 어머니 알마 마테르의 상과 함께 “베드로전서 2장 1~2절”이란 문구가 새겨져 있다.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아기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1754년 당시 이 대학은 학생, 즉 자녀가 아버지 하나님께로 자라가도록 젖을 주어 기르는 어머니의 역할을 감당하고자 세워졌음을 알리는 증거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러한 설립 이념은 오늘날 컬럼비아대엔 더는 남아 있지 않다.
잇단 총장 사퇴와 시위, 졸업식 취소 등으로 ‘대학의 목적은 무엇인가’를 묻고 있는 오늘날 미국 대학가가 되찾아야 하는 건 아버지 하나님이다. 알마 마테르, 우리 대학생들의 어머니는 오직 아버지의 진리 안에서만 그 자녀를 참되게, 보람되게 살도록 가르칠 수 있다.
박성현(미국 고든콘웰신학대학원 구약학 교수·수석부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