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역 인근 건물 옥상에서 결별을 통보한 연인을 흉기로 살해한 A씨(25)의 신상정보가 인터넷을 통해 무분별하게 확산하고 있다. 4년 전 폐쇄됐던 범죄자 신상 공개 사이트인 ‘디지털교도소’까지 다시 등장했다. 가해자에 대한 사적 제재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피해자의 신상까지 무차별 노출되자 여성가족부 차관은 9일 2차 가해를 중단해달라고 호소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에 따르면 디지털교도소는 전날 A씨의 학교와 출신지 등 개인신상정보를 공개했다. 2020년 처음 등장했던 디지털교도소는 당시 사적 제재 논란으로 한 차례 폐쇄됐지만, 최근 다시 운영을 시작했다. 운영진은 “지금 교도소가 다시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오는 13일 통신심의소위원회를 열어 디지털교도소 접속차단 조치를 의결할 방침이다.
이러한 사적 제재 움직임은 A씨가 수능 만점자 출신 의대 재학생이란 사실이 알려지면서 더욱 불이 붙었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의 신상까지 무차별적으로 인터넷에 떠돌았다. 피해자의 SNS에는 추모 댓글뿐 아니라 A씨의 범행을 두둔하는 식의 댓글도 이어졌다.
피해자의 언니라고 밝힌 인물은 이날 SNS에 해당 댓글을 명예훼손과 허위사실유포, 모욕죄로 신고했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그는 “동생의 신상이 담긴 계정을 비공개 또는 삭제하려 했으나 오류가 걸려 하지 못하고 있다”며 “제 동생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기 위해서 힘내겠다”고 밝혔다.
신영숙 여가부 차관은 이날 성명을 내고 “SNS 등을 통해 피해자의 신상과 사진이 무분별하게 확산하는 2차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며 “단순한 호기심이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길 수 있다. 고인에 대한 ‘신상털기’ 등 2차 가해를 중지해달라”고 당부했다.
경찰은 A씨의 신상공개 여부를 결정하는 신상정보공개심의원회를 열지 않기로 했다. A씨 뿐 아니라 피해자 신상까지 함께 무차별 유포되면서 유족이 2차 피해를 호소하는 상황을 고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자 측 입장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경찰 수사에선 A씨의 계획범죄 정황이 추가로 드러났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흉기로 피해자를 공격해 살해한 뒤 가지고 있던 다른 옷으로 갈아입은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A씨가 범행 과정에서 피해자의 혈흔이 자기 옷에 묻을 것을 예상하고 미리 다른 옷을 챙겨온 것인지 등을 확인하고 있다.
앞서 A씨는 범행 2시간 전 집 근처 경기 화성의 한 대형마트에서 흉기를 미리 구입한 뒤 피해자를 불러낸 것으로 드러났다. 전날 구속된 A씨는 영장실질심사에서 계획 범행임을 인정했다.
경찰은 10일 A씨의 범행 동기 등을 확인하기 위해 사이코패스 진단검사도 실시할 방침이다. 서울경찰청은 프로파일러를 투입해 A씨를 면담한 뒤 진술 분석을 진행하기로 했다.
경찰은 A씨의 휴대전화 디지털 포렌식 결과와 주변인 진술을 종합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다른 동기가 있을지 다양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 조사와 별개로 A씨가 재학 중인 대학도 A씨에 대한 징계 절차에 돌입했다.
정신영 기자 spiri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