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예배가 끝나고도 한참 지난 시간인 오전 10시. 서울 관악구 왕성교회(길요나 목사) 예배당에는 그 시간까지 남아 눈물로 기도하는 성도가 있었다. 길요나(56) 목사가 손을 얹고 기도를 시작하자 “아멘”하며 평안한 미소를 지었다. 길 목사는 지난 9일 “새벽예배와 금요돌파기도회(철야예배)에서 부르짖는 성도들의 모습이 우리 교회 정체성”이라고 설명했다.
신앙 전통 잇는 젊은 교회 꿈꿔
길 목사는 12년 전 왕성교회에 부임했다. 40대 젊은 나이에 아버지 길자연 목사의 뒤를 잇기란 쉽지 않았다. 반대 목소리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교회를 잘 이끌어나갈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혼자 묵상하는 걸 좋아하는 조용한 성격이에요. 전임 목사님과 스타일이 한참 다른데 성도들이 잘 적응할까 고민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주인되시는 주님께서 절 들어 옮기시는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주변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순종했습니다.”
열일 제쳐두고 목회에 온 힘을 쏟는 아버지 모습을 보고 자란 길 목사는 오히려 목회자가 아닌 영화감독을 꿈꿨다고 한다. 아버지 성화에 못 이겨 1991년 총신대 신대원에 입학했지만 숭실대에서 영상사업 관련 공부를 함께하며 다른 길을 모색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이듬해 경기도 수원 시은소교회에 부임해 고등부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진정한 목회자로 거듭났다.
“시은소교회 아이들 영성이 정말 뛰어나서 당시 방언을 못 하는 사람이 저밖에 없을 정도였어요. 제 영적 자존심이 허락을 안 하더라고요. 급조해서라도 따라가야겠다는 생각에 금식기도원에 가는 등 하나님을 붙잡다 보니 하나님께서 저를 새롭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때 학생 중엔 이제 목회자가 된 친구들도 많아 동역자로 지내고 있죠.”
이후 미국 풀러신학교에서 목회학 석사와 박사를 마친 길 목사는 과천왕성교회 담임을 거쳐 현재의 교회로 온 후 젊은 교회로 체질을 바꾸고 있다. 기존 장년 성도들의 순박한 마음과 헌신을 잘 유지해 좋은 전통은 이어가면서도 열린 예배 등 새로운 형식을 접목했다. 젊은 부부 모임도 신설하며 구조적인 변화를 추구한 결과 지금은 청년들이 교회에 출석하는 비율이 부쩍 높아졌다.
다음세대를 향한 교회의 사랑은 지난달 설립한 ‘청년센터 W’에서도 드러난다. 청년들이 언제든 사용할 수 있는 센터에는 스터디카페와 면접준비실 안무연습실 라이브방송실 세미나실 등 다양한 공간이 갖춰져 있다. 길 목사는 “대한민국 청년세대는 ‘새로운 선교지’다. 청년들에게 복음이 다양하고도 적절한 시대적 접근방식으로 전해진다면 그들도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며 “얼마나 복음을 능력 있고 진실하게 전하느냐가 청년목회의 열쇠”라고 말했다.
예수님 잘 믿는 관악구 만들 것
이런 도전 가운데서도 놓칠 수 없는 것은 기도였다. 새벽예배 참석하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한 날에도 병원에 바로 가지 않고 강단을 지켰던 길 목사는 기도의 힘을 누구보다 깊이 알고 있다. 새벽 설교가 끝난 후에는 3대째 내려오는 기도 망토를 뒤집어쓰고 강단 위에서 부르짖는다.
“청년센터를 세우는 일도 새벽기도를 하던 중에 나온 아이디어였어요. 기도를 통해 교회에서 발생하는 문제나 어려움이 저절로 해결된 것을 자주 경험했죠. 성도들도 지금까지 교회가 설 수 있었던 힘이 기도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기에 기도를 멈추지 않고 있어요.”
또 하나 왕성교회가 붙들고 있는 것은 전도다. 왕성교회는 한국교회에 ‘태신자’라는 단어와 개념을 처음 도입한 곳이다. 이에 따라 1997년부터 올해 초까지 1만8000명이 넘는 불신자들이 결신하는 열매가 있었다. 코로나19 기간에도 비대면 전도 운동을 개발해 전도 애플리케이션인 ‘감동란’을 만들고 전도 대상자의 집 출입문 손잡이에 선물을 걸어두는 ‘행복 딜리버리’를 시행하는 등 전도의 지평을 확장해나갔다.
왕성교회의 목표는 관악구가 전국에서 가장 예수님을 잘 믿는 지역이 되는 것이다. 관악구는 잠시 머물다가 떠나는 인구비율이 높고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나 독거노인층이 많으며 유흥시설이 점차 늘어나는 등 그 어느 곳보다 복음이 필요한 곳이다. 이에 사랑의 김장, 어르신을 위한 삼계탕 대접 등 지역 섬김 사역을 꾸준히 하고 있다. 또 코로나 팬데믹때 어려움을 겪었던 지역 교회 62곳에 총 1억원을 전달하는 등 형제교회를 위한 헌신도 꾸준히 전개하고 있다.
“올해 우리교회의 목표는 소그룹(셀)이 살아있는 교회입니다. 주님이 보여주신 초대교회의 원형을 따라 대그룹 예배와 소그룹 교제를 회복하려고 합니다. 교회를 말씀과 기도로 든든히 세우는 것이 저의 최고의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안으로는 영혼의 회복, 밖으로는 지역의 필요를 돌보는 일에 매진하겠습니다.”
박용미 기자 mee@kmib.co.kr